경기 안양에 사는 맞벌이 주부 이모 씨(33). 지난해부터 아들(2)을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낸다. 매일 오전 8시에 맡기고 오후 7시경 데리고 온다.
얼마 전 어린이집 원장이 “올해부터는 개인 사정으로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운영한다”고 알려왔다. 물론 사전에 전혀 상의하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가 정한 어린이집 운영시간은 오전 7시 반∼오후 7시 반.
이 씨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맡기는 처지에서 항의할 수는 없었다. 그는 “보육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규정대로만 봐 달라는 건데 안 된다니 황당했다”면서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도우미를 추가로 써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신 씨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딸(7)에게 “엄마 아빠 퇴근이 늦을 때마다 네가 동생을 30분만 돌봐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요즘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직장도 별로 없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 무상보육 전면 확대라지만 워킹맘은 아이 키우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무상보육이 올해 전면 확대되면서 이처럼 보육시간을 임의로 단축하는 어린이집이 늘고 있다. 아이를 늦은 시간에 맡기고 일찍 데려가는 전업주부를 노린 횡포다. 종일반, 반일반 구분 없이 지원되는 보육료가 같다는 점을 악용한 셈.
원장과 보호자가 협의하면 보육시간을 조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원장들이 일방적으로 시간 단축을 통보한다는 데 있다. 부모들은 원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아이를 일찍 데려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원장이 일방적으로 운영시간을 단축했다가 적발되면 1차 시정명령을 받는다. 그래도 고치지 않으면 운영정지 처분을 받는다. 2차에도 시정되지 않으면 시설 폐쇄 처분도 가능하다.
관리와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어린이집 원장의 횡포가 심하다는 지적이 많다. 운영시간 단축을 통보받았다는 학부모 A 씨는 “당신들 아니어도 아이를 맡기려는 사람이 많다는 식이다. 그러니 머리를 조아리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맞벌이 주부 B 씨는 “어린이집이 운영시간을 단축하건 말건 똑같은 지원금을 받으니 되도록 운영시간을 줄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운영시간을 조사한 뒤 지원금을 달리 줘야 이런 폐단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어린이집은 약 4만2500곳. 정부는 민원이 제기됐거나 보육통합정보 시스템으로 분석해서 부정행위의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된 곳 위주로 점검한다. 따라서 부모들이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한 이런 행태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민경진 인턴기자 부산대 국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