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리드하라/폴 스미스 지음·김용성 옮김/464쪽·2만2000원·IGM북스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기업문화를 정의할 수는 없다. 논리나 통계자료만으로 제안을 수락하게 할 수는 없다. 일방적인 지시로 부하 직원의 열정을 북돋울 수는 없다. “하지만 스토리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인류 역사에서 리더십의 요체였다. 고대의 샤먼부터 중세의 음유시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영웅 전설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은 청중이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를 위해 노래의 리듬, 시의 운율, 이야기 구조가 활용됐다. 그러나 요즘엔 이야기의 자리를 공식 보고서, 메모, 정책 매뉴얼이 대신하고 있다. 회의에선 얼마나 따분하고, 졸리고, 감동 없는 말들이 오고 가는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당장 스토리텔링을 시작하라’는 게 이 책의 조언이다.
저자는 글로벌기업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20년간 근무한 리더십 및 커뮤니케이션 교육 전문가. 그는 최고경영자(CEO) 앞에서의 첫 프레젠테이션 경험을 들려준다. 그는 심혈을 다해 자료를 준비했지만 앨런 래플리 P&G 회장은 발표를 듣는 20분간 스크린을 등지고 앉아 한 번도 슬라이드 화면을 보지 않았다. 대신 발표자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는 깨달았다. “회장은 중요한 것은 내 입에서 나오지, 스크린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컨설턴트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이 지방법원장으로부터 과제를 의뢰받았다. 배심원단의 심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조사 끝에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인 배심원 심의실에서는 상좌에 앉은 배심원이 대화를 지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생들은 배심원들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야 활발한 토론과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조사 결과를 본 지방법원장은 만족해하며 다음과 같은 지시를 모든 법원에 내렸다. ‘즉시 배심원실에 있는 둥근 테이블을 모두 제거하라. 그 자리에 직사각형 테이블을 놓으라.’”
이 스토리는 반전의 결말로 끝난다. 법원장의 진짜 목적은 배심원들의 심의 과정이 활기를 띠지 못하도록 해 재판 심리가 지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은 그해 리포트 점수로 A를 받았지만, 자신들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신입 조사원들에게 이 스토리를 말하며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전 명확한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친다”고 말한다. 백 마디의 지침보다 스토리 한 편은 잊히지 않는 생생한 교훈을 던져준다.
스토리텔링은 일상생활에서도 요긴한 기술이다. 저자는 스토리텔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나만의 스토리를 수집하라’고 조언한다. 책이나 인터넷에서도 스토리를 찾을 수 있지만 역시 가장 공감을 얻는 스토리는 내 인생의 경험담이다. 책의 말미에 주제별로 스토리를 분류하고 활용하는 법을 담은 부록도 쓸 만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