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자·이현우 모자의 ‘세대공감’ 가구 만들기
지난달 10일 충북 제천의 한 목공소에서 황금자 이현우 모자가 직접 만든 상을 살펴보고 있다. 황씨 모자는 함께 상을 만들며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함께 나무를 살피던 황 씨는 아들의 푸념에 “이게 진짜 나무야. 도끼질 외에는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진짜 나무”라고 했다.
박 목수가 옆에서 거든다. “이 나무는 잘려있지만 살아있는 나무야. 비 오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맞고 5년을 버틴 나무지. 사람도 못 하는 일을 한 대단한 나무라고. 허허.”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다. “요즘 우리 가족끼리 함께하는 시간이 부쩍 줄었잖아. 상이 있으면 같이 과일도 먹고 이야기도 할 수 있대. 이거, 꼭 아들이랑 만들고 싶었어. 투덜대지 말고 엄마랑 같이 만들자. 응?” 바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애꿎은 바닥만 차고 있던 이 군은 말없이 입을 삐쭉댔다.
황 씨 모자가 박인규 목수로부터 좋은 나무 고르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황 씨는 제천에서 지역 문화재와 유물을 소개하는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황 씨는 “문화해설사로 일하다가 우연히 박 목수가 하는 전시회를 알게 됐어요. 상과 찻상이 전부인 전시회였지만 무언가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애들 어릴 때 상을 놓고 둘러앉아 밥을 먹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황 씨 모자의 대화가 줄어든 건 이 군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다. 황 씨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정신없이 사는 동안 이 군은 훌쩍 자랐다. 엄마보다 친구에게 털어놓는 비밀이 많아졌고 가끔씩은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하기도 했다.
황 씨는 그때부터 아들과 함께 박 목수의 작업장에서 상을 만드는 꿈을 꿨다. 가족이 함께 두고 사용할 물건을 아들과 함께 만들며 소통하고 싶었다. 박 목수도 흔쾌히 승낙했다. 황 씨가 자신이 만드는 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박 목수는 상이 파편화된 현대 사회의 가족을 접합시킬 수 있는 가교라 주장한다. 예전엔 가족이 같은 시간에 상을 가운데 두고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만 집 안에서 상이 사라지며 가족의 대화도 단절됐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상을 대신한 건 식탁이다. 상을 차리고 치우는 시간은 훨씬 짧아졌지만 식탁은 상을 온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식탁은 직장과 학교, 학원에서 온통 시간을 보내는 가족 구성원이 급하게 들러 ‘끼니’를 때우는 집 안의 섬이다. 뚜껑만 연 채 놓은 반찬통 몇 개를 두고 급하게 밥을 먹는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박 목수는 황 씨 모자가 상을 만들 수 있도록 공구를 준비하며 입을 열었다. “요즘 가족의 모습을 한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식탁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가족이 없습니다. 식탁에서 밥을 먹곤 바로 소파로 가죠. 소파에 앉아선 또 어떻습니까. 가족이 서로의 얼굴은 보지 않고 전부 TV만 보고 있죠.”
상을 두고 앉으면 가부좌를 하게 돼 몸가짐이 가지런해지고 마음까지 단정해진다는 건 박 목수가 주장하는 ‘상론(床論)’의 핵심이다. “식탁에 앉으면 허리 아래가 가려져 안 보이죠.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몸 전체가 가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른들과 앉아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상은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의 겉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샌딩작업. 황씨 모자는 긴 시간이 걸리는 샌딩작업을 하며많은 대화를 나눴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나무와 공구가 준비됐다. 황 씨와 이 군은 각자 손에 장갑을 낀 채 작업대 앞에 섰다. 박 목수도 옆에서 작업 준비를 마쳤다. 우선 고른 나무를 원하는 크기에 맞게 잘라야 한다. 황 씨 모자가 나무의 양쪽 끝을 잡고, 박 목수가 전기톱을 이용해 약 150cm 길이로 나무를 잘랐다. 폭은 길이에 맞게 약 16대 9의 비율로 맞추면 된다.
다음은 나무의 표면을 깎아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박 목수는 5년간 양달과 응달을 오가며 자연 건조시킨 나무만 쓴다. 나무의 성질은 좋아지지만 겉엔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여 있다. 황 씨 모자는 대패를 이용해 나무의 낡은 옷을 함께 벗겼다.
“엄마. 나무에 이상한 얼룩이 있는데?” 대패질을 하던 이 군이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나무 몸통에서 가지가 죽어 나간 흔적인 ‘옹이’를 일컫는 것이었다.
박 목수는 “보통 가구점에선 옹이를 흠으로 보는데 옹이도 나무가 살았던 흔적 중의 하나예요. 예쁜 옹이를 찾았으면 거기서 대패질을 멈추고 샌딩을 시작해도 됩니다”라고 조언했다.
샌딩을 하는 황 씨 모자의 모습은 마치 벼루에 먹을 가는 문인 같았다. 모자는 말이 없고 오직 샌딩기계 소리만이 조용히 작업실을 채웠다.
엄마가 분위기를 바꿔보려 말을 꺼냈다. “아들.” 이 군이 답했다. “응?” “엄마 전에 너 카스(카카오스토리의 준말) 들어가 봤어. 어떻게 여자친구 이야기는 있는데 엄마 말은 한 줄도 없니?”
엄마가 투정부리듯 던진 말에 이 군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뭐, 엄마야 매일 보니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엄마가 입을 뗐다. “엄마는 네가 집에만 들어오면 방문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참 서운했어. 그게 그동안 일하느라 많이 못 챙겨준 내 잘못인가 싶기도 했고. 그래도 엄마가 아기 때부터 너 참 예뻐했던 거 알지?” 황 씨의 말을 듣던 이 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목수가 황 씨 모자에게 말했다. “이 상 다 만들고 집에 가면 아마 오며가며 상을 계속 쓰다듬게 될 거예요. 만들 때의 기억과 직접 만들었다는 경험이 상에 대한 애착으로 변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천천히 샌딩을 하며 무생물인 나무와 교감하고 나면 사람과 소통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부터 상을 공통 화제로 놓고 서로 대화도 늘어날 겁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작업은 오후 3시가 넘어서 끝이 났다. 엄마와 아들이 함께 만든 상은 투박했다. 가구점에서 직접 산 것처럼 매끄럽진 않아도 어딘지 모르게 시선을 끄는 형태였다. “잘 만들어졌네요. 허허.” 박 목수가 껄껄 웃으며 칭찬의 말을 건넸다. 황 씨가 아들의 등을 톡톡 토닥였다. “아들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 아들이 답했다. “뭘, 그래도 재미는 있던데.” 그리고, 이 군은 이날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