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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재기 노리는 K리거] 철든 홍철 “욕심 버렸다…목표는 주전!”

입력 | 2013-01-21 07:00:00

성남일화 홍철이 부상과 부진이 겹친 최악의 2012시즌을 잊고 올 시즌 측면 수비수로 부활을 선언했다. 스포츠동아DB


올림픽-월드컵대표팀 측면수비수
‘포스트 이영표’ 찬사 속 승승장구

왼쪽 뒤꿈치 수술…재활만 2개월
부진 탓에 벤치신세…자신감도 뚝
팬들과 설전 파문…다시 부상 불운

수비출신 새 감독의 채찍 전화위복
“대표팀? 일단 주전부터 되찾겠다”


# 포스트 이영표

7일 성남 일화의 전훈지 울산에서 만난 홍철(23)에게 물었다.

“‘포스트 이영표’로 불리던 2011년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요?”

“어린 나이라 철이 없었을 때죠.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대표팀 경기를 뛰었고, 이름이 알려지며 힘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항상 겸손하고 신인의 자세를 가져야 했는데….”

홍철은 지난 시간을 반성했다. 한국축구 부동의 측면 수비수 이영표(밴쿠버)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축구는 서둘러 ‘포스트 이영표’ 찾기에 나섰다. 당시 사령탑인 조광래 감독의 첫 선택은 홍철이었다. 홍철은 2011년 2월 터키 평가전에서 이영표와 같은 등번호 12번을 달고 왼쪽 측면을 부지런히 누볐다. 전문가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승승장구했다. 대표팀은 물론 올림픽팀에서도 꾸준히 활약했다.

“떨어질 거란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아버지께서 ‘한번에 모든 걸 잃고 추락할까봐 걱정 된다’고 하셨죠. 저는 그냥 웃어 넘겼어요. 그때는 그런 말이 전혀 안 들렸거든요.”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 더 나은 활약을 바랐다. 선천적으로 튀어나온 왼발 뒤꿈치를 깎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수술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 시작과 끝은 ‘수술’

회복은 3주면 충분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재활까지 2개월. 2012년 2월초에나 팀 훈련에 합류했다. 2012년에는 런던올림픽과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등 굵직한 경기가 많았다. 올림픽과 대표팀 승선이 걸린 중요한 시즌이었다. 속도를 냈다.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어요. 금방 회복해서 런던올림픽도 출전하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안일했던 거죠. 어느 선에서 만족했던 게 어리석은 생각이었어요.”

동계훈련이 턱없이 부족해 신체 밸런스나 컨디션이 크게 떨어졌다.

“몸이 안 올라왔는데 잘 하려고만 했어요. 연계 플레이는 없고 드리블이나 개인 기술에 의지했죠. 할 수 있는 게 10∼20 정도인데 50∼60을 하려다보니 될 리가 있나요.”

4월초에는 팬들과 직접 설전을 벌여 구설수에 올랐다. 성남 팬들이 4월3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센트럴코스트(호주) 원정에서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비판하고 나섰다. 홍철은 트위터를 통해 팬들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파문이 커졌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쓰며 수습에 나섰다. 마음을 추스르려고 삭발도 했다.

“팬들께서 1∼2년차에는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근데 작년에는 못한다고 꾸짖어 주시니까 많이 서운했던 게 사실이죠.”

몸과 마음이 크게 요동치며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끝 모를 부진에 벤치에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후반기에는 측면 공격수로 나섰다.

“공격 위치에 서는 게 싫었어요. 공격 포인트가 많지도 않은데 괜히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 공격이라도 봐야했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11월21일 대구전을 앞두고 급성맹장염으로 쓰러졌다. 30경기 출전 2골2도움. 수술로 시작해 수술로 끝낸 시즌이었다.

# 포스트 신태용

시즌을 마치고 휴가를 보냈다. 작년 12월8일 ‘은사’ 신태용 감독이 경질됐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어린시절 볼보이를 하며 지켜봤던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뛰어난 실력과 쇼맨십을 빼닮고 싶었다. 줄곧 자란 성남에서 그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었다. 2010년 성남에 입단하며 ‘사제의 연’을 맺었다. 황홀했다. 신 감독은 홍철을 보살폈다.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나 다름없는 그의 부재는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슬프고 죄송했어요. 자신감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요. 새 감독님 오시면 난 어떡하지.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었어요. 극단적으로 팀을 옮길까 생각했고요.”

매일같이 자책했다. 신 감독의 경질이 자신의 탓만 같았다.

“죄송해서 전화도 못했어요. 어느 날 카톡이 왔더라고요. 신 감독님이었죠. ‘잘 지내냐’는 일상적인 말이었어요. 근데 어찌나 슬프던지. ‘잘 지내고 있죠. 감독님 밥 사주세요’라고 썼다가 부족한 것 같아서 ‘사랑합니다’ 한마디 더 했죠. 잠시 뒤에 감독님도 ‘사랑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카타르시스 때문일까. 홍철은 조금씩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일어서야 된다고 채찍질했다. 주의의 격려도 힘이 됐다.

“더 열심히 뛰고 잘 하는 게 신 감독님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언제까지 울고 힘들어하고 불평불만만 할 수는 없잖아요. 조금씩 털고 일어나게 됐어요.”

#시작과 끝은 ‘행복’

손을 내민 것은 안익수 감독이었다.

“안 감독님께서 2012년은 잊고 백지상태에서 해보자고 하셨어요. 백지에서 그림을 그리면 좋은 작품 나오지 않을까요. 성실해라, 실천해라 좋은 말씀 많이 해주고 계세요.”

안 감독은 홍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공격수 출신으로 개인기술이 훌륭한 만큼 언제든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기량 회복을 원하지 않았다. 제자가 더욱 만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훈련이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부상 없이 운동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안 감독님께서 수비수 출신이어서 제 단점을 잘 봐주세요. ‘한번에 덤빈다거나 무게 중심이 높다’는 지적을 해주시죠. 같은 실수를 해도 놓치지 않으시고요. 부족했던 수비력을 높이는데 적격인거 같아요. 제 포지션인 측면 수비수로 더 발전해야죠.”

끝으로 국가대표팀 욕심은 없냐고 물었다.

“전혀요. 구단에서 제 자리를 찾아 열심히 뛰는 것만 생각하고 있어요. 2012년에야 축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할 겁니다. 성남 팬들이 ‘홍철은 우리 프랜차이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죠. 행복하게 시즌을 마치고 싶어요.”

홍철?

▲생년월일 : 1990년 9월 17일
▲키/몸무게 : 176cm/67kg
▲포지션 : 측면수비수
▲학력 : 성남중앙초-풍생중·고-단국대
▲프로경력 : 성남(2010∼)
▲대표경력 : 국가대표, 올림픽대표


울산|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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