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지하도 상권, 매출 호조 비결은…
환승객 유혹하는 지하상점 8일 서울 강남역에서 지하철 승객들이 2호선과 신분당선을 잇는 환승구간을 걸어가고 있다. 이곳에는 빵집과 도넛가게, 편의점, 화장품점 등이 입주해 큰 상권을 이루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 이번 겨울 들어 서울에 첫 폭설이 내린 지난해 12월 5일, 지하철역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들의 매출은 1주 전보다 20.3%나 늘었다. 교통체증을 염려한 이들이 지하철로 몰렸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지하 경제’가 확대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세금 등 정부의 규제를 회피하려는 숨은 경제활동’이란 기존의 뜻과는 다르다. 지상(地上) 상권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편의점이나 중저가 화장품가게, 커피전문점 등이 활동 영역을 지하 공간으로 확대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하 상권은 지하철 이용객을 중심으로 한 유동인구가 꾸준하고, 궂은 날씨로 매출이 줄어드는 ‘날씨 리스크’도 적은 편이다.
흥미로운 것은 담배 매출이 지상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상의 편의점 매출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나 된다. 그러나 지하철 편의점에선 20% 초반이다. 지하철역 구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는 탓이다. 반면 음료나 두유, 우유 등 바로 마실 수 있는 제품의 매출 비중이 지상 매장보다 높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필요한 물건만 산 뒤 바로 자리를 뜨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고객 체류시간이 지상 매장보다 30초∼1분 짧고 고객 회전도 빠르다”고 말했다.
미샤와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도 다수의 지하철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샤는 2008년부터 서울 지하철 1∼9호선과 분당선, 신분당선, 중앙선에서 108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전체 매장 600여 개 중 18%가 지하에 있는 셈이다. 김선아 마케팅기획팀 과장은 “특히 퇴근 시간인 오후 6∼7시에 매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출퇴근길에 가볍게 발라볼 수 있는 색조 화장품이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도 지하 매장을 늘리고 있다. 미스터피자가 운영하는 머핀·커피전문점 마노핀은 전체 43개 매장 중 33개를 지하철역에 두고 있다. 홈스테드커피는 지난해 7월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에 커피, 머핀, 와플 등을 파는 코와핀 1호점을 연 뒤 현재 21개 매장을 모두 지하철역에서 운영 중이다.
고유가와 불황이 지속되고 지하철 노선이 확대되면서 지하철 이용객은 최근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의 수송인원(약 25억5966만 명·1∼9호선 기준)은 2008년(약 22억9385만 명)보다 11.6% 늘었다.
지하 상권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기존 상가들이 야심 차게 리모델링을 시도하기도 한다. 2011년에는 강남역 지하상가, 지난해에는 강남터미널 지하상가가 개보수 후 다시 문을 열었다. 나정용 강남터미널지하상가 이사는 “지난해 6월 재개장한 직후 유동인구가 리모델링 직전보다 30% 늘었다”고 전했다. 또 GS리테일이 9호선과 신분당선 상가 운영을 맡고, SPC가 신분당선 식음료 부문을 임대 운영하는 등 대형 유통기업들도 지하상권 운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지하 상권은 고객들이 쇼핑을 목적으로 방문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치다가, 또는 시간을 때우다가 즉흥적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 도넛, 김밥, 테이크아웃 커피, 간단한 화장품, 액세서리 등 중저가 업종에 어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지하 상권은 지상에 비해 다양성은 떨어지지만 의류나 액세서리, 화장품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여성 고객을 흡수하기 좋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론 쇼핑 목적의 고객 방문을 늘려 매출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강유현·장관석 기자 yhkang@donga.com
최은경 인턴기자 서울대 사회교육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