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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차지완]대통령의 도로는 안전한가요?

입력 | 2013-01-21 03:00:00


차지완 사회부 차장

“하느님, 제발 저와 제 가족을 버리지 마십시오.”

구종근 씨(45)는 믿는 종교가 따로 없지만 지난 8년여간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고 왼쪽 다리는 근육 및 피부 이식을 계속해야 했다. 통증이라는 악마는 망치로 그의 다리를 내려쳤고 바늘로 쑤시기도 했다. 어쩔 때는 1t 트럭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짓누르기도 했다. 13차례의 수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4년 9월 전만 해도 이런 불행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토요일,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1t 트럭을 몰고 화물 배달에 나섰다. 오전 5시부터 시작된 일은 오후 4시 반 가정집에 가전제품을 배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느 순간부터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사고 3일 만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그의 몸에는 생명 유지 장치에 연결된 줄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빗길 과속으로 마주 오던 화물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구 씨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한 사고의 결과는 그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한순간에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반칙운전에 한 가족 전체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한국의 도로에서 목격하는 반칙운전의 행태는 중앙선 침범과 과속만이 아니다. 자기부터 먼저 가겠다고 앞차에 바짝 달라붙는 꼬리 물기는 지금 당장 어느 교차로에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다. 경적과 상향등은 상대 운전자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바뀐 지 오래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적에 짜증이 밀려오고 번쩍하는 상향등에 일순 눈이 머는 상황을 겪으면서 나 스스로도 잔혹한 보복의 ‘폭력성’이 잠재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교통전문가들은 한국 도로를 전쟁터에 곧잘 비유한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브라운대 왓슨국제관계연구소 등에 따르면 미국이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11년간 숨진 미군이 2000명, 민간인이 1만3000명 등 총 1만5000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2001∼2012년) 한국의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망자는 7만5000여 명이다. ‘조준사격’이 이뤄지는 전쟁터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 한국의 도로다.

한 달여 뒤엔 새 정부가 출범한다. 역대 대통령이 그랬듯이 박근혜 당선인도 청와대 경호처와 일선 경찰의 삼엄하고도 신속한 경호를 받으며 전국의 도로를 누빌 것이다. 대통령 리무진이 지나는 길은 교통통제 때문에 반칙운전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런데 몇 가지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교통통제로 뻥 뚫렸던 도로가 대통령이 지나가고 나면 반칙운전이 난무하는 도로로 바뀐다는 것을. 그 도로에서 지난해에만 5363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구 씨처럼 무고한 가장들이 반칙운전에 당해 수십만 명의 가족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조만간 그런 후진적 교통문화를 가진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한다는 것까지도….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