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적다고 가루약 안 만들면 환자가족이 직접 빻아야 하나“가루약 요구땐 문전박대… 약사의 사회적 의무 저버려”■ 이래서 문제
최근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는 약국이 늘고 있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영유아나 중증환자에게 필요하지만 알약에 비해 조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해 가루약 조제 거부를 차단하고 가루약 제조수가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DB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은 A 양(2)의 엄마는 지난해 12월 말 약을 지으러 대형병원 인근 약국에 들렀다가 조제 거부를 당했다. 가루약이었기 때문이다. 가루약은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영유아나 중증 환자에게 필요하지만 알약에 비해 조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이가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약 조제마저 거절당하니 A 양 엄마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가 이 사연을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이하 환우회) 게시판에 올렸더니 “나도 가루약으로 조제해 달라고 했다가 약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약사가 한숨을 팍팍 쉬고 짜증을 내 마치 내가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환우회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결심하고 회원을 대상으로 “대형병원 인근 약국에서 가루약 조제를 거부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한 회원이 이틀 만에 50여 명에 이르렀다.
환우회는 올해 초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연합회) 등과 함께 대형병원 인근 약국의 가루약 조제 거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보건복지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안기종 연합회 대표는 “조제 거부는 약사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것으로 어떤 상황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위법행위”라고 강조했다. 현행 약사법 제24조 1항은 “약국에서 조제에 종사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는 조제 요구를 받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조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 대표는 “약국이 이윤 때문에 가루약 조제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대형병원 인근 약국은 늘 환자가 많다. 그런데 가루약 조제로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환자들이 인근 약국으로 가버리기 때문에 약국이 거부하거나 꺼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약국들이 가루약 조제를 거부하면 동네 약국에 가야 하고 여기서도 또 거부한다면 환자나 보호자가 집에서 직접 알약을 빻아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라고 반문했다.
▼ 대한약사회의 답변 ▼
“시간-비용 많이 드는 점 고려… 불합리한 수가 먼저 조정해야”
약국이 조제를 거부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일부 대형병원 인근 약국이 가루약 조제를 기피하고 있다”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성명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
환자도 가루약 조제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또 1주일분 약만 먼저 조제해주고 나머지 약은 환자가 많지 않을 때 조제해 택배로 보내는 등 환자와 약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민경진 인턴기자 부산대 국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