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상담 칼럼 ‘디어 애비(Dear Abby)’를 집필해온 미국의 폴린 필립스 여사가 17일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누리꾼들은 그가 반세기 동안 써온 칼럼에서 명구를 뽑아내 돌려 보며 추모하고 있다. 한 남자가 물었다. “사귄 지 1년 된 애인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예스’라는 답을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하죠?” 애비는 되물었다. “(그녀에게 할) 질문이 뭔데요?” 가족사가 궁금하지만 조사할 돈이 없어 고민이라는 독자에게는 짤막하게 조언했다. “공직에 출마하세요.” 결혼 6개월 만에 3.9kg짜리 아이를 낳은 며느리가 조숙아라고 우긴단다. “3.9kg짜리 조숙아도 있느냐”는 시어머니의 우문에는 이런 현답을 내놓았다. “아이는 제때 나온 겁니다. 결혼이 늦었을 뿐이죠.”
▷필립스 여사는 쌍둥이 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17분 일찍 태어난 언니 에스더 레더러와는 판박이 인생을 살았다. 같은 대학에 들어가 대학신문에 가십 칼럼을 공동 집필했고 결혼도 같은 날 했다. 상담 칼럼은 언니가 먼저 쓰기 시작했다. 언니는 시카고선타임스에 ‘앤 랜더스에게 물어보세요(Ask Ann Landers)’를 쓰던 필자가 사망하자 1955년부터 그 칼럼을 이어받았다. 언니의 일을 거들던 동생은 자신의 칼럼을 쓰기로 하고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을 찾았다. 그는 면접 자리에서 2시간 동안 편지 70통에 답장을 쓰고 나왔고, 집에 오자마자 1956년 1월 9일자부터 쓰라는 전화를 받았다.
▷성경 속 여성 예언자 애비게일(Abigail)을 따라 지은 칼럼 ‘디어 애비’는 전 세계 1400개 일간지의 독자 1억1000만 명이 읽는 명칼럼이 됐다. 그가 매주 받는 편지는 e메일을 포함해 3000∼2만5000통. 한창때는 편지봉투를 뜯는 직원 4명과 답장 담당자 6명을 따로 둔 적도 있다. 40년 넘게 칼럼을 쓰다 보니 ‘흐린 날’도 있었다. 옛날에 썼던 칼럼을 재활용한 적이 있다고 고백해야 했고,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던 언니와 사이가 틀어져 5년간 말도 않고 지내다가 2002년 언니가 죽기 전 해에 화해했다.
▷필립스 여사는 성공 비결에 대해 “특별한 지혜를 가진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의존할 뿐”이라고 했다. 결혼 후 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는데 그때 환자들을 돌보며 ‘듣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가장 좋은 건 그저 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디어 애비’를 읽으며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에 대해 토론했다. 20세기에 시작된 ‘디어 애비’와 ‘앤 랜더스’라는 일상의 공론장은 세기를 넘겨 쌍둥이 자매의 딸들이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정겨웠던 멘토의 명복을 빈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