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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성희]하규섭 자살예방협회장

입력 | 2013-01-21 03:00:00

“경쟁과 속도에 내몰린 삶… 사회가 보듬지 않으면 절망은 다가온다”




“자살은 사회적 병리현상이지만 반드시 줄일 수 있습니다.” 국립서울병원의 좁디좁은 원장실을 자신만의 ‘포스’로 채우고 있는 하규섭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의 어조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왕년의 야구스타 조성민 씨의 자살로 자살 문제가 또다시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영화배우 최진실 진영 씨 남매에 이어 최진실 씨의 전 남편 조 씨까지 자살함으로써 유명인 자살의 전염효과도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다. 2010년 기준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33.5명으로 OECD 평균(12.8명)보다 2.6배 많다. 하루평균 42.6명이 목숨을 끊는 자살은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사망 원인 4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게 우리의 사생관(死生觀)이었는데 어쩌다가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 되었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 하규섭 국립서울병원장(52)을 찾았다.

우울증과 조울증 등 기분장애의 최고권위자인 하 원장은 3년 전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을 맡아 우울증의 위험성을 알리고 자살을 예방하는 데 힘써 왔다. 그는 최근 서울 광진구 능동로 국립서울병원 터에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짓기 위해 서울대 의대 교수를 휴직하고 국립서울병원장으로 부임했다.

사회 변화 너무 빨라 적응 못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자살은 개인 책임인가, 사회 책임인가.

“2010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8개 대학이 공동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응급실에 실려 온 1805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했다. 국제저널에 싣기 위해 아직 분석 중이지만 그 결과가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데이터를 보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살 시도자의 3분의 1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누가 우울증에 걸리나. 우울증의 요인에는 유전적 요소, 뇌의 기전, 호르몬 변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우울증이 오면 ‘나는 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울증 자살은 사회 책임이 아니다. 나머지 3분의 2의 자살 원인은 연령에 따라 다르다. 노인은 질병과 생활고를 겪는 경우가 많았고 중년 남성은 직장이나 돈 문제로 고민하다가 자살을 선택했다. 청소년은 성적이나 교유관계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공통점은 모두가 대인관계의 갈등이 자살의 직접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옛날에는 대인관계 갈등이 없었나. 그런데 하필 지금, 그리고 왜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을까.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대인관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데 있다. 예컨대 아프고 가난한 노인이 죽음을 선택한다고 할 때 그 이면에는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마음(인간관계)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사회의 자살은 분명한 사회적 현상이며 일종의 (어두운) 문화라고 단언한다.”

모든 자살의 이면에는 문제 해결 방식이 없는 사회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자식간의 갈등에 의한 자살이건, 생계형 자살이건, 쌍용자동차 해고근로자의 자살이건 모든 자살의 이면에는 소통의 문제가 있다. 그런 문제 해결의 통로가 막혀 버렸을 때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가.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서태평양지부에서 산업화 근대화 세계화 때문에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고 발표하자 여러 나라 대표 모두가 웃더라. 한국만 그런 과정을 거쳤느냐는 거다.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른 데 문제가 있다. 다른 나라가 100년, 50년, 30년이 걸린 일을 우리는 50년, 30년, 10년에 이뤄냈다. 정신의학적으로 스트레스란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변화 속도가 크다는 것은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이다. 변화가 크면 변화에 늦게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그런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시스템이 없다 보니 그 결과가 자살률 상승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살의 첫 번째 특징이 노인 자살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10만 명당 자살률이 20명에서 30명으로 늘었는데 늘어난 10명이 노인이다. 오래 살게 될 줄을 모르고 개인도 가족도 국가도 준비를 하지 못했다. 두 번째 특징은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다. 원래 자살 시도는 여자가 많이 하고 자살성공률은 남자가 높다. 남자가 좀더 과격한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통계를 보면 20, 30대 여성자살률이 상당히 높다. 사회에 진출해 일을 하며 받는 부담이 큰데 시댁과의 갈등, 육아부담 등 전통적 스트레스도 여전해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스트레스가 급증했는데 이를 관리해줄 사회적 지지(支持)체계는 무너졌다. 물론 우울증도 자살의 원인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자살률은 3배가량 증가한 데 비해 우울증 환자는 약간만 늘었다. 우울증을 한국형 자살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긴 어려운 이유다.”

중계식 자살 보도… ‘베르테르 효과’ 부추겨

―심란해진다. 그러면 자살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20년 전 한국의 교통사고율은 세계 1위였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연간 1만5000명이 넘었다. 지금은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위에서 7위로 떨어지고 예전에 7위이던 자살이 4위로 올라섰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안전벨트 때문이다. 누구나 안전벨트를 매게 된 것은 안전벨트를 의무화한 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국민의 인식변화다. 여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현재처럼 자살이 유행하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첫째, 언론은 자살 이유를 단순화해 보도한다. 둘째로 자살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연예인이 자살하면 죽은 장소와 방법을 상세히 보도하고 관이 화장장에 들어가는 것까지 실시간 중계한다.”

하 원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돈이든 관계이든 문제가 생기면 나름대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잘 안될 경우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된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는 데서 죽으려고 결심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을 거쳐 일단 자살을 결심하게 되면 그 유혹은 마약보다 크다. 죽겠다는 결정을 처음 하는 데 1년이 걸리면 다음에는 한 달, 일주일로 짧아지고 나중에는 ‘문제 발생=자살’로 자동화된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조사를 보면 한번 생긴 자살충동은 최소한 3년은 유지된다. 그런데 이때 언론을 통해 유명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는 것이다.

―베르테르효과가 그렇게 심각한가.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자살 시도를 한 사람 10만 명에다 우울증 환자, 조성민 씨 같은 자살 유가족 등을 합쳐 자살고위험군을 최소한 50만 명으로 본다. 그런데 언론에서 ‘성적 부진에 시달리는 학생이 1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고 보도하면 자살고위험군에 속하는 성적 부진 학생은 ‘아, 나도 빨리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난주 외래진료를 하는데 여러 환자가 ‘조성민 씨를 보니까 나도 벌써 죽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죽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 공교롭게도 최진실 씨가 10월 1일 자살했는데 그 한 달 동안 자살자가 평소 1000명에서 1800명으로 80%나 늘었고 그 가운데 80%가 (최 씨처럼) 목을 맨 자살이었다.”

―책임을 언론에 돌리는 것 아닌가.

“암을 줄인다고 모든 국민에게 암을 유발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고 발암물질을 없애버리고 스트레스를 안받게 할 수는 없다. 암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에 대한 조기 검진이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자살위험군은 아까 말한 대로 우울증환자, 자살 시도자, 자살 유가족 등 50만 명가량 된다. 이들 가운데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본 10만 명만 관리해도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 이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면담이나 전화통화만 해도 효과가 있다. 간호사 한 명이 100명을 관리한다고 했을 때 간호사 1000명을 채용하는 비용만 있으면 된다. 연간 1만5000명인 자살자를 30%만 줄인다 해도 5000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아이 한 명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2억6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저출산 사회에서 5000명 살리는 데 300억 원이면 남는 장사 아닌가.”

자살시도자 10만명만 관리해도 큰 효과

―그런 방식으로 자살률이 떨어진 사례가 있나.

“1980년대 자살률 세계 1, 2위이던 핀란드는 ‘심리적 부검’을 실시해 큰 효과를 보았다. 핀란드도 우리처럼 한창 발전할 때 자살률이 높았다. 어느 사회든 변화가 심할 때는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궁지로 내몰리는 경향이 있다. 핀란드는 1986년부터 전문가들이 자살자 1300명의 유족을 심층조사해 4년간 분석한 뒤 자살위험군에 대한 대책을 세워 추진했다. 그 결과 10만 명당 30.3명이던 자살률을 2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일본도 국가적 차원의 자살예방 대책을 통해 자살률을 낮추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노원구가 홀몸노인 등 자살위험군에 대한 관리로 자살률을 20%가량 떨어뜨렸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상담 치유 프로그램도 시작해야 한다. 예컨대 최진실 씨의 남매는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조울증의 국제적 권위자인데 어째서 국립정신병원장을 택했나(국립정신병원 건물이 하도 낡아 옛날 배경의 영화를 찍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실제로 으스스한 풍경이 나오는 영화 촬영 장소로 자주 이용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정신과를 택할 때만 해도 정신과의 주류는 정신분열증이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걸 피해 국내 최초로 우울증클리닉을 열었다. 우울증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이다. 약 먹고 관리만 잘하면 아무리 돌팔이의사를 만나도 90% 치료가 된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하며 20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제는 ‘내 진료실로 오는 환자가 아니라 진료실 밖에 있는 환자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사람은 전체 환자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우울증임을 스스로 인정하지도 않고 주변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병은 소문을 내라’는 게 우리 정서인데 우울증은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하 원장은 어렸을 때 국비유학생이던 아버지가 오스트리아로 유학 가는 바람에 제대로 아버지를 만난 것은 중1 때였다. 그는 언제나 그리워했던 아버지처럼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기초과학은 부자 나라나 할 수 있고 정말로 머리 좋은 천재가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어머니는 의사의 길을 권했다. 자신과 성격 및 성향이 너무 다른 동생(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을 보며 “사람은 왜 각기 다를까”에 대한 의문을 품었던 소년은 의대를 택하되 사람을 탐구할 수 있는 정신과를 선택했다.

아이도 청년도 중년도 노인도 아프다. 잘나가건, 못 나가건 모든 국민이 경쟁에 지치고 뒤처질까 불안해한다. 얼마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면 ‘힐링’이 유행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정신적 고통의 극단적 표현이 자살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 현상에는 대한민국의 모순과 병폐가 오롯이 투영돼 있다.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는 희망과 믿음을 복원하는 일이 자살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누가, 어디에서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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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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