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국민 우선 배려한다며 1% 계층 적대시해선 안돼”
민주통합당의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계 중진인 원혜영 의원이 18일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똑똑한 실패’와 ‘관용적 진보’를 강조했다. 대선 패인에 대해서는 “노무현을 넘어선 문재인을 보여주지 못하고 ‘노무현 없는 노무현 선거’를 치른 게 패착이었다”고 자성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친노 책임론에 동의하나.
“민주당 사람 모두의 책임이다. 다만,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대선후보였고, 핵심적인 친노 인물이니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인정해야겠다. 문 전 후보는 정치권 진입(지난해 4·11 총선)이 늦어 국민에게 평가받는 기간과 과정이 짧았고, 대선후보로서의 준비기간도 짧았다. ‘노무현을 넘어 선 문재인’을 보여주지 못했다. ‘노무현 없는 노무현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졌는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평가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똑똑한 실패’가 되도록 해야 한다. ‘친노는 책임이 있고, 친노가 아닌 사람은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귀결되면 민주당은 발전할 수 없다.”
“신뢰 경쟁에서 졌다. 문 전 후보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졌다. 경제민주화, 복지, 남북관계 등에서 양쪽 주장이 상당히 비슷했다. 결국 내용의 차이보다는 ‘누가 더 잘 실천할 수 있겠느냐’란 것이 승부를 갈랐다. 문재인은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겸손한 사람인데 신뢰에 있어서는 박 당선인에게 미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야권 단일화에 너무 매몰돼 있었다. 야권 단일화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닌데도 ‘야권 단일화만 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맏형론, 통 큰 양보를 거론했지만 정작 과정에서는 형다운 모습, 통 큰 모습을 못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단일화 때 후보직을 포기할 각오로 자신을 던져 국민에게 감동을 줬고, 후보도 되고 대선에서도 승리했지만 이번 대선 때엔 끝까지 타산하고 힘겨루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일화도 실패하고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
―문 전 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 ‘민주당 힘만으로는 새정치,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시민사회가 견인해 달라’고 했다. 동의하나.
“‘민주당만 갖고는 안 되니 다른 세력과 연합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여기엔 한계가 있다. 민주당이 자강(自强)하고 철저하게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 외연 확대보다는 당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는 게 우선이다.”
―친노, 하면 편가르기가 생각난다는 지적들이 많다. 친노의 편가르기 전략에 중도층이 돌아선 것은 아닐까….
―‘친노’의 의미가 변질됐다는 것인지….
“나는 노 전 대통령과 통추를 같이 한 원조 친노다. 친노는 영광된 호칭이다. 우리의 과제는 ‘비욘드 노무현(노무현 뛰어넘기)’을 구현하는 것이다. 또 민주당을 기반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의 과제는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뜻과 정신을 승계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정의한다면….
“DJ는 꾸준히 포용과 타협의 정치를 했다. 이질적인 세력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와도 연대하는 유연한 진보의 모습을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과 지역주의 타파, 혁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너무 저돌적이어서 타협을 못했다. DJ의 포용과 노 전 대통령의 혁신을 계승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공(功)과 과(過)가 같이 있는 분이다. 그런데 한쪽으로 몰아붙여 악(惡)으로만 규정하는 건 관용적 진보의 태도가 아니다.”
―과거 노 전 대통령과 통추에서 함께 활동했다. 통추에는 ‘통합’이란 용어가 들어가는데, 민주당은 그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나.
“상대방의 정책과 입장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상황에 따라 편협한 진보, 배타적 진보의 모습을 보였다. 정말 관용적 진보의 모습이 필요하다.”
―민주당에선 당의 노선을 우(右)클릭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데….
“일관성 있는 입장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책임 정치’라는 믿음을 줄 수 있고 중도층도 올 수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대선 때 어떤 점에서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해군기지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일관성 결여가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경제민주화’는 민주당에서는 오래 전부터 외친 구호인데,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듯한 모양새가 됐다.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저기는 일회용이다, 진정성이 없다, 박근혜 주변 인물들이 경제민주화를 중요 가치로 생각하겠느냐’를 설득해내지 못했다. ‘맞춤형 정책’이 수반돼야 하는데 우리는 내놓지 못했다.”
―과거의 민주당과 현재의 민주당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들이 많은데….
“과거에는 독재-반독재의 대립구도가 선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 기준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모두 독재를 뿌리로 한다’고 하고 있다. 중요한 건 ‘누가 국가운영을 잘 할까’인데 우리는 그 부분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
―현재 민주당의 강령에는 ‘99% 국민을 위한 정당’이란 문구가 들어가 있다. 나머지 1%는 누구를 뜻하나.
“계급적 적대주의로 오인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어려운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게 민주당의 역할이지만 그렇다고 특권층을 적대시해서도 안 되겠다.”
―야당은 정치개혁과 도덕성을 무기로 해야 한다. 지난해 4·11 총선 공천 때 정치개혁의 의지, 높은 도덕성을 보여줬다고 보나.
“못 보여줬으니 문제다. 주먹구구식 공천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당명, 색깔까지 바꿨다. 다문화사회를 대표하는 이자스민 의원과 탈북자인 조명철 의원을 공천한 곳도 새누리당이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먼저 껴안았어야 했다.”
―민주당은 집권할 수 있을까.
“의원들끼리 ‘당이 동네 친목회보다 못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하다못해 동네 친목회도 결산, 평가가 있는데 어떻게 총선에서 져놓고 그 뒤로 한 번도 제대로 된 평가가 없느냐는 거다.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허용한 뒤 민주당리더십회의(DLC)를 꾸려 ‘정책의 정치화’를 추진했다. 우리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을 독립적인 진보세력의 지적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복지, 환경, 소수자 보호, 남북관계를 면밀하게 연구하도록 해 민주당이 의정활동에, 집권하면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야당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판세력이면서 동시에 대안세력이 돼야 한다. ‘반(反)독재’ ‘반FTA’ ‘반재벌’ 같은 안티테제가 아니라 더 잘할 수 있고, 더 믿을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그렇게 국민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견제 장치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누가 딱 부러지게 뭐라 할 수 있나. 측근, 원로, 참모, 동지가 마땅치 않지 않나. 우리가 독하게, 똑 부러지게 비판할 건 하고 견인할 건 견인해야 한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민주당의 언론관에 대해서도 지적이 많은데….
“가령 종합편성채널은 이미 출범을 했다. 정치인과 정치세력은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국민과 소통한다. ‘변화된 환경을 외면하는 것이 맞느냐’란 식으로 정리될 것으로 본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이시내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