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현대오일터미널 르포
현대오일뱅크 계열사인 현대오일터미널은 1000억 원을 투자해 울산 울주군 온산읍 이진리 일대에 대형 석유제품 저장고와 가공시설을 짓고 있다. 국내의 다른 정유사에 비해 사업다각화에서 뒤진 현대오일뱅크가 물류사업으로 한 단계 도약에 나선 것이다. 6일 항공기에서 촬영한 사업현장. 현대오일뱅크 제공
화주(貨主)를 대신해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을 저장해 주고 임대수익을 얻는 이 사업은 국내 정유사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지난해 사모펀드로부터 330억 원의 투자도 받아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철환 현대오일터미널 부장은 “이곳에 짓는 저장 및 가공시설은 아시아 석유시장의 물류기지로서 현대오일뱅크가 성장하는 데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외환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던 1999년 말 현대그룹에서 분리됐다. 이후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화학투자회사(IPIC)가 최대주주가 되면서 사업 축소와 경영효율화에 나섰다. 단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장기투자는 생각조차 못했다. 고인수 현대오일뱅크 부장은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에 인수된 뒤에는 석유저장고사업 외에도 윤활기유(윤활유에 들어가는 첨가제) 공장과 벤젠·톨루엔·자일렌(BTX) 공장 설립 등 사업다각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체 공정의 60%가량이 완료됐지만 일본의 한 종합상사 등은 적극적으로 임차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체 용량(28만 kL)의 70%에 이르는 물량을 채울 수 있는 계약이 진행 중이다. 지진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일본에 거액을 투자해 석유제품 저장시설을 짓느니 한국에 있는 시설을 빌려 쓰려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진원지에 인접한 이바라키 현 등에 있는 석유정제시설은 당시 크게 파손됐다. 또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서 해외에서 수입하는 산업용 및 가정용 석유제품이 크게 늘었다.
김 부장은 “기름은 구매나 운송 때 한번에 많은 물량을 취급하는 게 유리하다”며 “일본 고객들은 큰 탱크가 있는 이곳에 물량을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경제적인 규모로 조금씩 일본에 공급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이 사업을 장기적으로는 임대와 저장뿐 아니라 화주의 요청에 따라 석유제품을 섞어 재가공해주거나 저장유의 매매를 주선하는 트레이딩 등의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유류저장사업의 패러다임을 단순한 ‘화물 저장’에서 ‘화물가치 상승’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고 부장은 “울산을 포함해 국내 주요 항구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도 물류기지를 추가로 건설해 저장뿐 아니라 선박을 이용한 운송까지 맡는 물류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