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경북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의 작은 소망
17일 경북 의성군에 있는 성광성냥공업사에서 손진국 대표가 윤전기에서 불량 성냥을 골라내고 있다. 손 대표는 “이게 1970년대에 만든 국산 제1호 성냥 윤전기인데 지금은 국내에 하나 남은 국산 제품이 되어버렸다”며 씁쓸해했다. 의성=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안내판도 하나 없었다. 의성읍 끝자락에서 잔뜩 깔린 얼음판을 한참 종종걸음 쳐 겨우 발견한 문패는 낡아서 읽기조차 힘들었다. 정갈하게 단장한 의성향교(경북 유형문화재 제150호)와 마주선 탓인지 건물은 더 허름해보였다. 잔잔히 번지는 기계 소리가 없었다면 인기척을 의심할 정도였다. 》
찐득한 유황냄새 속에 분주히 손을 놀리던 김 씨 아주머니는 말 한마디마다 굵은 한숨을 뱉었다. “이름은 뭐할라꼬, 기냥 공장 잘 되게 마이 도와주이소”라며 성냥 정리하느라 고개도 돌리질 않았다. 옆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30년 가까이 일했는데 이래싸이(이렇게 되니) 속 시끄러바서 안 그러나.”
뱃사람들이 습기에 강하다며 좋아했던 ‘향로 목각’. 신라청동향로 위에 불이 활활 타는 모습을 상표에 담은 ‘향로’ 성냥만이 유일한 국내 제품이다. 나머지 시중에 파는 성냥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된다. 창립 당시 평사원으로 출발해 지금껏 회사를 지킨 손진국 대표(78)에겐 예나 지금이나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세월을 버텨왔다.
“월남한 사장님하고 서넛이 골방에서 창업했을 때도 그게 뿌듯했어. 그 귀한 성냥을 우리가 직접 만들었노라. 1950년대엔 성냥 한 곽이 쌀 한 가마니 값이었거든. 그걸 국산화하면서 대중화시킨 거라. 1960, 70년대 호황으로 전국을 누빌 때도 마찬가지야. 우리 성냥으로 서민들이 ‘곤로(풍로의 일본어투)’에 불 지피는 걸 떠올리며 신이 났지. 지금은…, 책임감이랄까. 우리밖에 없잖아. 여기 접으면 한국 성냥은 사라지니까. 공장 돌릴수록 적자인데, 돈 따졌으면 벌써 접었지.”
하지만 그 사명감도 갈수록 바래지고 있다. 정부나 문화단체가 수십 차례 다녀가며 ‘근대 문화재’라고 치켜 올렸지만 별 다른 도움이 없다. 몇 년의 간청 끝에 지난해 ‘사회적 예비기업’으로 선정해 종업원 임금을 일부 보전해준 게 전부다. 손 대표는 “겨우 숨통은 트였지만 허덕이는 건 매한가지”라며 “일부 기계를 방글라데시 등에 팔았는데도 (적자)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 1960, 70년대를 이끌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홀대를 받는 건 성냥공장만이 아니다. 당시 생활현장을 근대문화로 선정해 보존에 힘쓰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강원 정선에 있던 국내 유일한 1960년대 기계식 엿 제조공장인 ‘사북 엿 제이소’도 지난해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계라도 건져볼까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다.
현재 성광성냥은 연로한 손 대표를 도와 아들인 손학익 상무가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있다. 그가 7년 전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손 상무는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건 아버지가 평생을 성냥에 바친 덕인데 그냥 무너지는 꼴을 볼 순 없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문화체험관을 운영해보고 싶은데 진척이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
오후 4시 무렵, 겨울철 시골은 해가 일찍도 떨어졌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성냥공장을 덮자 흠칫 한기가 몰려들었다. 또다시 이곳을 찾을 때도 기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깔끔하니 치워진 향교의 처마 위에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구슬피 울었다.
의성=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일본의 아기자기한 성냥 디자인. 젊은 층이 팬시상품으로 많이 구입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의 성냥산업이다. 1920년대 개항과 함께 지금의 고베(神戶) 시와 효고(兵庫) 현에서는 성냥산업이 붐을 맞았다. 당시 성냥은 비누나 석유램프처럼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품목이었다. 1950년대 이후에도 이곳에 있는 수백 개의 성냥공장이 만들어낸 성냥이 전국으로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성냥 산업도 1970년대 이후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휴대용 라이터의 등장과 도시가스의 전국적 공급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성냥 산업을 사양길에 접어들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민관이 힘을 모아 ‘일본성냥협회’를 만들어 성냥회사들의 경영을 전력으로 도왔다. 단순히 보존과 유지에 그치지 않고 사업다각화를 꾀해 안정화를 이뤄냈다.
1923년 효고 현에 설립된 ‘니토샤(日東社)’는 이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현재 종업원 수 300명에 육박하는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활로를 뚫은 덕분이다. 최근엔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인증까지 받았다. 지자체와 협력해 어린이 문화체험공간을 만드는 등 지방 문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채널A 영상] 성냥 공장 전국에 딱 한 곳 남아…‘추억의 불’ 지킨다
정양환·백연상 기자 ray@donga.com
▲ 동영상 =한국의 마지막 성냥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