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유용? 오래돼서 기억이 좀… 항공권깡? 사실땐 사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동흡 후보자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구체적인 자료 제출을 요구받자 “검토해 보겠다”며 애매한 입장을 취했고, 오전 질의 과정에서 요청받은 자료를 오후 2시 반 속개될 때까지 제출하지 않았다가 청문회가 정회될 뻔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의 태도에 새누리당 의원들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 “법 위반이라고 비판한다면 수용”
민주통합당 박홍근 의원이 “결과적으로 법 위반 아니냐”고 추궁하자 “위장전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법 위반(주민등록법 위반)이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그 부분은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 때 승용차 홀짝제를 피하기 위해 관용차를 추가로 이용한 점은 시인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추궁에 이 후보자는 “기사가 ‘예비차가 몇 대 있어 차가 나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외교관인 둘째 딸을 관용차로 출근시켰다는 의혹에 대해선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 재직 시절 9번의 출장 중 부인을 5번 동반했던 데 대해서도 “아내가 실제로 비서관 역할을…”이라고 했다가 질타가 이어지자 “그 부분은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동행할 때 헌재 경비로 나간 적이 있느냐”는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의 질의에 “일절 없다. 예산 사정이 열악해 아내가 비서관 역할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보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부인의 숙박비 등을 사비로 다 냈다고 할 수 있나”라고 추궁하자 “(다른 사람들도) 100%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식사비나 항공요금 등은 사비로…. 사과드린다”며 말을 바꿨다.
헌재 재판관 재직 시절 월평균 400만 원의 특정업무경비도 도마에 올랐다. 특정업무경비는 헌재 재판관의 ‘재판 활동 지원’을 위해 지급되는 돈. 야당 의원들은 재산 증식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한 의혹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6년 동안 고스란히 계좌로 들어온 3억2000만 원의 특정업무경비가 예금 증가로 이어진다. 공금 유용”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홍근 의원은 “특정업무경비가 입금된 통장은 월급통장이 아니었다. 해외송금, 경조사비 지출이 이뤄졌다. 경조사 등이 공적 업무냐”고 따졌다.
민주당 최재천 의원이 “특수업무경비는 반드시 공적 업무 추진에만 집행하고 영수증을 제출하게 돼 있다”고 추궁하자 “그런 걸 지시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특정업무경비를 재판 관련 활동비에 다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는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의 질문에는 “전액을 다 썼는지, 워낙 세월이 오래돼서 기억이 좀…”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해외 출장 시 비행기 좌석 등급을 낮춰 차액을 챙겼다는 ‘항공권깡’ 의혹에 대해서도 질문이 집중됐다. 2008년 미국 출장 때 1등석 항공권을 끊었지만 실제로는 한 등급 아래인 비즈니스석을 타고 차액을 챙겼고, 2009년 독일 출장 때는 주최 측이 이코노미석을 발권해 보내주자 헌재로부터 비즈니스석 승급을 위한 차액을 받고 실제 이노코미석을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이 후보자는 “사실무근이다. 사실이면 바로 사퇴하겠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도 “(구체적인 자료를) 가져와서 명확하게 해명해야지…”라며 “답변 태도를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못마땅해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이시내 인턴기자 숙명여대 국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