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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계 일류] 세계 도마시장 1위 네오플램

입력 | 2013-01-23 03:00:00

애플처럼 혁신적 디자인… 주방업계의 유니클로 꿈꾼다




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네오플램 본사 쇼룸에서 이 회사 박창수 사장이 항균 컬러 도마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97년 3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업무빌딩 13층 세원회계사무소 대표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회계사무소 대표는 맞은편 창으로 보이는 서울교육대 캠퍼스를 적시는 비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회계업무는 1년 단위로 반복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한 회계연도 업무를 막 마친 그는 ‘이제 이 사이클을 25번 더 돌면 나도 60세네’라고 생각하고는 인생 참 덧없다는 생각에 놀랐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회계사로 안정된 삶 살 수 있었지만

세계 항균 도마 시장 1위 업체인 중소기업 네오플램의 박창수 대표이사 사장(51) 얘기다. 그는 1997년 3월 회계사 일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결심을 했다. 틈틈이 공부해 연말 즈음에는 토플과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 점수도 괜찮게 얻었다. 그랬는데 외환위기 사태를 맞았다. 치솟는 환율 때문에 유학을 포기했다. ‘그냥 회계사를 천직으로 여기란 뜻인가 보다….’

애초에 적성에 잘 맞는지 알아보고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한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홀어머니는 벌이가 없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등록금 마련이 숙제였다.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등록금에서 20만 원이 모자랐다. ‘고소득 보장’이라는 단어에 혹해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고, 6개월 만에 합격했다. 대학 3학년. 당시 최연소 합격자와 동갑이었다. 한 해 100명 남짓한 회계사만 배출되던 때라 학교를 마치자마자 대형 회계법인에 취직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너무 빨리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일까? 그는 “회계사 일이 썩 재미있지는 않더라”고 했다. “‘재미’가 뭘까요?”라고 물었는데 한 문장으로 설명하진 못했다. 종합해보면 피고용인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것,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 한 고객보다는 공동체 전체에 이바지하는 것, 이 세 가지의 교집합이 그가 말하는 재미인 듯했다.

전체 일의 한 조각만 맡는 게 싫어 25세 때 중소형 회계법인으로 옮겼고, 31세 때 개인사무실을 개업했다. 고객과 갈등을 빚는다든가 영업이 힘들진 않았다. 고려대 법대 3학년으로 편입해 한참 후배들과 공부했다. 사법시험을 볼 생각은 없었다. “공부하겠다는 이유가 뭐냐”는 지도교수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대학원에 가고 싶긴 했지만 자녀가 생기자 학업과 회계사 일, 가정생활을 동시에 꾸려가기 버거웠다.

35세 되던 3월, 비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딱 한 번 외도를 꿈꿨지만 거기까지였다. 일이 썩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박차고 나가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9년이 더 흘렀다.

○ “다르게 만들어야 세계 1위 된다”

운명의 여신은 ‘밀당’(밀고 당기기라는 뜻의 속어)의 고수다. 원하는 때에는 손을 잘 내밀지 않는다. 그러다 몇 년 뒤 불쑥 품에 안긴다.

직원 100명이 넘는 회계법인 공동대표가 된 박 사장은 2006년 미국에서 주방용품 유통으로 성공한 고교 선배를 만나 술을 마셨다. 그가 “형님, 유통만 하지 말고 독자 브랜드 상품을 만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선배는 “난 미국에 주로 있으니 어려운데…, 네가 도와줄래?”라고 되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선배와 그의 동생, 박 사장이 돈을 모아 주방용품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곧 이름을 네오플램으로 바꿨다.

‘네오플램(neoflam)’은 새롭다는 의미의 접두사 ‘neo’와 영어 단어 ‘flame(불꽃)’을 합성해 만든 것이다. 박 사장은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가 ‘새로움’이기도 하고, 불꽃은 주방과도 연관이 있는 데다 회사도 불꽃처럼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주방 일에는 서툴렀고 도마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그래서 ‘비상근으로 옆에서 돕기만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기왕 하는 것 잘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1등 할 수 있는 상품만 만들자. 남들이 안 만드는 걸 해야 1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방용품 중 대형 업체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이템을 찾아보니 도마였고, 시중에 나와 있는 도마를 살펴보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과 색상, 위생이 문제점인 듯했다. 아무리 씻어도 음식찌꺼기가 끼고 항상 습한 환경에 있는 도마를 주기적으로 햇볕에 말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예 항균 소재로 도마를 만들자, 그것도 아주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의 화학회사 마이크로밴을 찾아가 자본금 전액인 5억 원을 걸고 항균 소재 독점 공급 계약을 따냈다.

네오플램은 지금까지 90종류가 넘는 도마를 개발했다. 세울 수 있는 도마, 빵을 자르기 쉬운 도마, 독신자들이 음식을 썰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접시 겸용 도마, 홈이 있어 육즙이 밖으로 넘치지 않는 도마, 그림이 그려진 도마, 깍둑썰기한 음식물을 프라이팬에 넣기 쉬운 도마…. 컬러 도마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그런 화려한 색을 써도 괜찮겠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박 사장은 “분홍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 도마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스텔 톤의 화사한 색상을 입힌 예쁜 도마가 전시대에 진열돼 있으면 주방용품이 아니라 팬시 다이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젊은 주부들은 열광했다. 2009년이 되자 매출이 500억 원 규모가 됐고, 비상근으로 회사 일을 봐주기 어려웠다. 가족들을 모아 “내가 회계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하면 어떨까”라고 물었더니 아내와 딸은 반대했고 자신과 아들은 찬성이었다. 그는 “그럼 결정권은 가장(家長)이 행사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 “주방업계의 ‘유니클로’가 되고파”

기본적인 항균 도마 ‘샘플리체’ 3종 위에 항균 컬러 칼을 올려놓은 모습. 샘플리체 도마는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주방에서 식재료별로 도마를 지정해 놓고 쓸 수 있다. 도마 가장자리 홈은 국물이 넘치지 않게 하는 용도다. 네오플램 제공

박 사장은 사업의 어려움에 대해 “딱히 없었다”고도 하고 “매일매일이 고비”라고도 했다. 갸우뚱하는 기자에게 “잘 팔려 외형이 폭발적으로 커졌지만 그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에 부딪쳤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체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짬을 내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고 1년 동안 7kg 이상 감량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사무실에서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박 사장이 다른 회사의 사례를 든 것은 두 번이었다. 애플과 유니클로다. 처음엔 애플처럼 연구개발과 디자인만 하고 제조는 다른 회사에 맡기는 형태의 회사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하는 수준의 품질로 제품을 만들어주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를 찾기 어려웠다. 2009년부터 중국과 한국에 공장을 지었고 적잖은 수업료를 치렀다. 지난해에는 직영 공장 4곳과 투자 공장 3곳이 모두 흑자를 내며 매출액 1125억 원에 6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00억 원이다.

박 사장은 “연간 700만 개의 도마를 만드는 네오플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3%”라며 “부문을 항균 도마 시장이 아니라 전체 도마 시장으로 넓혀도 우리가 세계 1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가격은 결코 비싸지 않게 정했다. 유니클로처럼 브랜드 이름만 들어도 ‘합리적인 가격에 세련되고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 대신 유니클로처럼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내면서 ‘네오플램 제품이라면 무조건 산다’는 팬이 나오게 해야 했다. 박 사장은 종이에 간단한 그래프를 그리며 설명했다. “이렇게 그은 이 선이 도마 판매량이라고 칩시다. 이 선을 늘려 매출을 높일 수도 있지만 그 옆에 다른 선을 하나 더 그으면 어떨까요. 도마만큼만 팔아도 매출이 배가 되는 셈이죠.”

‘도마를 사러 오는 바이어가 다른 제품을 하나 더 사가게 해야 한다’는 전략으로 끊임없이 신제품을 냈다. 미국 시카고의 가정용품 박람회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소비재박람회에 꼬박꼬박 참석했고 ‘네오플램 부스에는 언제나 새 상품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 1년에 두 차례, 4월과 10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수출입박람회에서도 전 세계 바이어들이 6개월마다 새로운 네오플램 상품을 볼 수 있었다.

○ “100년 기업을 만들겠습니다”

신제품을 낼 때도 ‘남들이 만들지 않는 주방용품, 처음부터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상품, 이야깃거리가 있는 제품’이라는 원칙을 지켰다. 세라믹 코팅을 한 화려한 색상의 컬러 냄비, 뚜껑 부위에 홈 없이 밀봉되는 물병, 가볍고 예쁜 컬러 칼 등이 그런 제품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부설 연구소를 만들고 업계 경력자들을 스카우트했다.

현재 네오플램이 제품을 수출하는 나라는 독일, 미국, 영국, 중국, 캐나다, 폴란드, 호주 등 모두 60개국이다.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시작했던 회사는 이제는 국내 직원만 160명 규모가 됐다. 지난해에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박 사장은 최근 회사 워크숍에서 자신의 꿈을 밝혔다. “100년, 200년 가는 회사, 모든 직원이 평생 다니고 싶은 회사, 자녀들도 보내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는 “나 스스로 그런 회사로 가야만 한다고 점점 더 확신하고 있다”며 “이 회사가 잘되게 만드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벌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재미가 없었다’고 회계사 시절을 설명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어조였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은 어떻게 됐을까. 네오플램은 지난해 모범 납세기업으로 꼽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때 주변 사람 한둘이 “대표가 회계사 출신인데 왜 이렇게 세금을 많이 냈어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박 사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금을 많이 내서 상을 받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라고 대답했다”며 활짝 웃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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