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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크림… 괴물젤… “불황엔 큰 게 좋아”

입력 | 2013-01-24 03:00:00

고기능성 고급화장품보다 용량 5∼6배 많은 기본보습제 인기 폭발




소비 침체 속에서 이른바 ‘짐승 용량’으로 불리는 대용량 화장품들이 인기다. 최근 키엘은 용량을 기존의 50mL에서 125mL로 늘린 ‘울트라 페이셜크림’(왼쪽)을 한정판으로 내놓았다. 오른쪽은 기존 제품. 키엘 제공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제품은 미백용도, 주름개선용도 아니다. 일명 ‘짐승용량(짐승처럼 큰 용량)’으로 불리는 대용량 제품들이다. 이들은 주로 보습 같은 기본 기능을 강화한 기초화장품들로 기존 화장품의 5, 6배나 되는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짐승크림’, ‘괴물젤’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짐승용량 화장품들은 최근 소비 침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며 화장품 업계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 점보 사이즈보다 큰 짐승용량

네이처리퍼블릭 직원들은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다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가장 많이 팔린 제품들이 주로 보습 기능을 강조한 대용량 제품들이란 사실이었다. 일반적인 수분 크림(50mL)에 비해 용량이 2배인 ‘모이스트 스팀크림’은 지난달에만 16만 개가 팔렸다. ‘알로에베라 수딩젤’(300mL)의 같은 기간 판매량은 무려 31만 개였다.

네이처리퍼블릭의 한 관계자는 “수분을 공급해 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수딩젤은 주로 여름에 많이 팔리는 상품”이라며 “‘짐승젤’이란 별명이 붙은 후 한겨울에도 불티나게 팔렸다”고 전했다.

더페이스샵은 고객들의 꾸준한 요청으로 월평균 4만 개 이상 판매되는 스테디셀러 ‘모이스처 토닉 위드 에센셜’(145mL)을 지난해부터 225mL 슈퍼사이즈로도 내놓고 있다.

대용량 제품의 인기는 수입브랜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키엘은 베스트셀러 상품인 ‘울트라 페이셜크림’(50mL)의 점보사이즈 한정판을 시판했다. 기존의 2.5배인 125mL로 용량을 늘린 이 제품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다음 달 초에 매진될 것으로 업체는 보고 있다. 키엘 측은 “대용량은 소용량보다 가격 면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소비 침체기엔 더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화장품, 기본으로 돌아가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대형마트들도 발 빠르게 대용량 화장품 출시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3월부터 벤처기업과 공동 개발한 300mL 대용량의 수분크림을 선보였다. 이 제품의 지난달 판매량은 지난해 8월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마트에서 단독 판매하는 ‘대화 알로에 겔’은 500mL의 ‘괴물용량’ 제품으로 지난해 5월 출시 이후 30만 개가 판매됐다. 박시우 화장품 담당 바이어는 “대용량 제품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가 확인됐다”며 “클렌징 오일 등 다른 기초제품도 500mL의 대용량에 1만 원 미만 가격으로 기획해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은 대용량 제품의 인기와 관련해 화장품 시장의 판도가 서서히 변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경기에 둔감하던 소비자들이 용량당 가격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기본 기능에 충실한 대용량 상품으로 투입 비용 대비 최고의 효과를 뽑아내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화장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은 기초 제품보다 몇 배나 비싼 기능성 화장품을 병아리 눈곱만큼 아껴 바르느니 차라리 기본에 충실한 대용량 화장품을 온몸에 충분히 바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소비 침체기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기본으로 돌아가다)의 법칙이 화장품 업계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