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크빈테른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독어독문학과 초빙교수
내겐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있다. 몇 해 전 그 친구가 아이를 낳았을 때, 친구 집에 갔다가 그가 아이에게 베트남어가 아닌 한국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많이 놀랐다. 내게 아이가 있다면 남편은 아이에게 한국어로, 나는 독일어로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개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지닐 수 있는 장점 아닌가.
그래서 친구에게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나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베트남어보다 한국말을 배워야죠”라고. 나는 한 번 더 설득했다. “옛날에 미국인과 결혼해서 이민 간 많은 한국 여자들도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쳤지요. 그러나 그 아이들이 나중에 한국말을 배우려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러나 친구는 계속 “아이가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왜 내 친구가 아이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지 않으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친구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예민한 사람이었기에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포착한 것이다.
나는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한국 사회가 외국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바를 확실히 감지할 수 있게 됐다. 그 프로그램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자들은 모든 면에서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훗날 다문화 사회에서 살게 될 아이들도 ‘완벽한 한국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된다.
불행히도 내겐 이런 메시지가 프로파간다처럼 보인다. 내가 다문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확인한 것은 한국 사회가 ‘한국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는’ 다문화가족만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내 친구가 베트남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에서 왔더라면 어땠을까. 많은 이들이 아이에게 영어를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을 거다. 독일인인 내가 아이를 낳았더라도 내가 아이에게 독일어로 말하는 것이 더 좋다고 조언했을 것이다.
다문화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처럼 보통 한국 사람들도 다문화에 대한 ‘옹졸한 생각’에 갇혀 있을까. 나는 많은 한국인들의 마음이 그렇게 좁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프로그램 제작진의 시야만 조금 더 넓어지면 될 것 같다.
유디트 크빈테른 강릉원주대 강릉캠퍼스 독어독문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