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내사 해결해달라” 전주와 함께 8000만원 건네… 알고보니 동사무소 동장
“금융감독원의 내사를 받고 있는데 해결해 주시면 인사를 하겠습니다. 5억∼6억 원 정도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권전문가 라모 씨(54)는 2011년 9월 자신의 증권방송 카페 유료회원 김모 씨(54)에게 도움을 청했다. 증권전문채널인 한국경제TV에 출연하던 라 씨는 미리 사들인 주식을 방송에서 추천한 뒤 주가가 오르면 팔아치워 1억 원 가까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수사 받고 있었다.
▶본보 1월 10일자 A12면 참조… 주식 산뒤 방송서 추천… 37억 챙긴 ‘증시 김선달’
금감원 조사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다가 김 씨가 국가정보원 직원이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김 씨는 “옛날과 달라서 요즘은 국정원 직원도 함부로 개입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라 씨에게 돈을 요구했다.
4일 뒤 라 씨는 경기도의 한 일식집에서 김 씨를 만나 현금 1000만 원과 발렌타인 30년산 양주 한 병을 건넸다. 이틀 뒤에는 서울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2000만 원을 더 줬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이라던 김 씨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라 씨와 신 씨 모두 재판에 넘겨졌고 신 씨는 구속까지 됐다. 검찰 수사 결과 김 씨는 충남 천안시 A동의 동장으로 드러났다. 개미들을 속여 번 돈을 국정원 직원을 사칭한 동장에게 사기 당한 것이었다. 증권방송 시장은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검찰은 주식 투자에 실패해 돈이 궁했던 김 씨가 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봤다. 수사 사실이 알려지자 김 씨는 올해 초 동장직을 그만뒀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강남일)는 신분을 속이고 금품을 받은 혐의(사기, 변호사법 위반)로 김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