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는 해외로… 軍 입대후 경력단절…
지난해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 중 한 장면. 로미오(왼쪽에서 두번 째)를 포함해 칼을 든 몬터규가 6명 중 5명이 외국인 무용수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는 솔로 춤을 추는 발레리노가 7, 8명은 필요하다. 군무진은 학교 재학생까지 동원해 충원할 수 있지만 솔로를 소화할 수 있는 발레리노를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김인희 단장이 나서 자신이 수석발레리나로 있었던 유니버설발레단(UBC)에 도움을 청했고 이에 UBC가 수석 무용수 엄재용을 보내준 덕분에 서울발레시어터는 경기 과천과 경남 창원에서의 공연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이원국발레단도 객원으로 발레리노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공연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자 단원 6명과 남자 단원 4명으로 비율은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발레리노를 객원으로 구하기가 어렵다. 그렇다 보니 한 사람이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호두까기 인형 공연 때 이원국 단장은 드로셀마이어 역과 왕자 역으로 번갈아 무대에 서야 했다.
전국의 대학 무용과에서 발레를 전공한 남학생이 매년 약 100명은 졸업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상황은 왜 이럴까. 이원국 단장은 “이 졸업생들 중에서 실제로 무용수로 활동할 정도의 기량을 갖춘 경우는 20명도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용과는 많지만 무용을 전공한 남자가 적다는 점을 노리고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뒤늦게 발레를 시작한 경우가 상당수라는 것.
그나마 기량을 갖춘 발레리노도 군 입대가 활동에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무용수들은 며칠만 쉬어도 몸이 굳는다. 2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창 기량을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반대로 퇴보한다”고 말했다. 국제 콩쿠르 입상자에게만 주어지는 군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대학 4년 동안 콩쿠르 준비에만 매달리는 것도 좋은 발레리노 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인재들도 요즘은 외국 발레단 진출을 우선시하고, 국내 최고 대우를 받는 국립발레단으로 몰리다 보니 다른 발레단은 실력 있는 발레리노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현재 국립발레단 소속 발레리노는 35명이다.
발레리노 부족 현상은 발레를 잘해도 입단할 발레단이 국내에 많지 않다는 데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문 단장은 “지자체에서 발레단을 만들고 운영해 풀뿌리 단계에서 활성화시켜야 한다. 군에서도 무용단을 운영해 무용 전공자들이 적어도 군 생활하는 동안 기량을 유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