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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따뜻하게 ‘코리아 스타일 원조’] 모잠비크 ‘새마을 농업훈련원’

입력 | 2013-01-25 03:00:00

검은대륙에 뿌린 한국식 새마을운동, 희망의 싹을 틔우다




이앙기 작동은 이렇게… 모잠비크 마니사의 ‘새마을 농업훈련원’ 농기계 실습 현장. 농촌진흥청에서 정년퇴직한 정성근 씨(68)가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산 한국산 이앙기 작동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마니사=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인 한국은 빈곤국과 개발도상국의 희망이다. 가난과 식민 지배를 겪은 경험은 원조 대상국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자산이다. 하지만 서구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원조 규모, 상대적으로 낮은 무상원조 비율, 부처별 집행에 따른 중복 등 원조 선진화를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공동으로 원조현장을 찾아 선진국형 원조로 가는 방향을 찾는 기획을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한국이 이제는 원조에서도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위상을 세우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 끝 ‘검은 눈물의 땅’ 모잠비크.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스무 살 청년 알베르토 칸즈에게 꿈을 꾸는 건 사치였다. 부모가 집을 나간 뒤 할아버지와 단둘이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지 10년째. 또래 친구 10명 중 3명만이 중학교에 입학하는 현실에서 칸즈는 할아버지의 교육열 덕에 고등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농사일뿐이었다. 호미 곡괭이로 농사지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3000∼4000메티칼(약 10만∼14만 원).

칸즈는 지난해 초 눈에 번쩍 띄는 신문광고를 보았다. “선진 농업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주고…숙식을 제공하고…지도자로 양성하고….” 수도 마푸투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농촌지역 마니사에서 농업훈련원이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2월 그는 2.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전국 각지에서 온 스무 살 안팎의 남녀 49명과 1기 교육생이 됐다. KOICA와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기아대책’, 포스코가 함께 모잠비크에 세운 ‘새마을 농업훈련원’은 이렇게 첫발을 뗐다.

○ 한국산 트랙터 경운기로 실전 교육

모잠비크 정부는 훈련원을 위해 1000만 m² 규모의 땅을 내놓았다. 그 터엔 실습농장과 기숙사 4개 동, 교실들이 들어서 있다. 칸즈는 여기서 먹고 자며 벼농사부터 채소, 과수 재배, 축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식 농업기술과 농업비즈니스 노하우를 배운다.

태극기와 모잠비크 국기가 펄럭이는 야외농장에서 눈에 띄는 건 한국 기업의 브랜드가 박힌 농기계. 한국에서 직접 들여온 이앙기 경운기 트랙터다. 농기계를 직접 사용해서 교육시키는 훈련원은 모잠비크에 두 곳뿐이다. ‘새마을 농업훈련원’은 현지 언론이 취재해 갈 정도로 관심이 높다.

모잠비크는 기후가 좋고 농경지로 활용 가능한 땅이 광활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농업잠재력이 큰 곳. 하지만 400년이 넘는 포르투갈 식민지 지배와 20여 년간 지속된 내전, 2000년대 대홍수 같은 천재지변이 겹치면서 ‘아프리카 최빈국’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이나시우 치아구 농업부 기술지도과장은 “국민의 8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민의 90%가 영세농이며 아직도 기계나 도구 없이 손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 농산물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근면 자조 협동” 구호에서 싹튼 희망

칸즈가 실습농장에서 농기계를 사용해 처음 일군 건 옥수수밭. 지난해 11월 태풍이 불어 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다른 밭이 망가졌을 때도 옥수수는 살아남아 싹을 틔웠다. 거센 바람을 뚫고 자란 옥수수를 보고 칸즈도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힘이 생겼다. 다음 달 졸업을 마친 뒤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옥수수를 재배하고 돼지를 치겠다는 야무진 희망을 갖게 됐다.

칸즈가 꿈을 꿀 수 있었던 건 농업교육과 병행된 새마을정신 교육 덕분이었다. 이상범 기아대책 모잠비크 지부장은 “오랜 식민지 지배를 겪으면서 빈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패배의식이 훈련원생들 몸에 배어 있었다”며 “잘살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주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근면 자조 협동.” 칸즈와 학생들은 입학 이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아침식사 전 모잠비크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로 이 구호를 크게 외치고 하루를 시작했다. 한국 교사들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한국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주며 학생들을 독려했다. 수시로 “100원이 생기면 저축부터 해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배웠으면 책임감을 가져라”와 같은 격언을 들려줬다. 칸즈는 “우리 스스로 내 이웃과 지역공동체, 내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해야”

이 프로젝트 완결판은 한국 사람들이 철수한 뒤에도 모잠비크 사람들 스스로가 훈련원을 운영하며 농장을 꾸려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이 참여해 농작물을 재배, 판매하며 수익을 내는 ‘한국식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농산물 유통을 체계화하는 법도 가르친다. 지난해 여름 시범사업으로 지역주민과 함께 토마토 콩 상추 등을 재배해 내다팔아 성공을 거뒀다. 김기현 농업훈련원 원장은 “건물이나 장비 같은 하드웨어만 주는 게 아니라 자립 노하우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같이 전수해 주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말했다.

KOICA는 올해 650만 달러(약 69억 원)를 들여 마푸투 서쪽 마툴라 지역에도 직업훈련학교를 세울 예정이다. 한국에서 기계장비를 들여와 한국 전문가들이 자동차정비·전기·용접 등을 가르쳐 기능공을 양성하는 학교다. 조병선 KOICA 모잠비크 사무소장은 “원조사업으로 직업훈련학교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 독일 정도”라며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모잠비크 이냠바느 주 실로린 마을의 한 어린이가 동네 한가운데의 펌프를 이용한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고 있다. 이냠바느=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캐나다, 국제원조 기관별 역할 분담… 예산 효율 높여 ▼

모잠비크 수도 마푸투 북쪽의 이냠바느 주(州). 이곳 농촌 마을인 실로리느는 지난해 10월 딴 세상이 됐다. 캐나다 공적개발원조(ODA) 집행기관인 캐나다국제개발국(CIDA)이 펌프식 우물을 설치하면서부터다. 주민 엘레나 냐보쿠 씨(51·여)는 “예전엔 1시간 반을 걸어가, 그것도 더러운 우물물을 겨우 길어다 마셨지만 이제 집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깨끗한 물을 얻는다. 병에 걸릴 걱정이 사라져 좋다”며 웃었다.

CIDA는 2010년부터 5년간 1270만 캐나다달러(약 136억 원)를 들여 이냠바느 주에서 식수 공급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미 126곳에 펌프식 우물을 설치했고 300개 마을 주민 6만7000명에게 화장실 위생 교육과 에이즈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올해는 2개 도시 약 4만 명에게 수돗물을 제공할 물탱크와 수도관도 설치한다.

모잠비크 현장을 함께 둘러본 한국국제협력단(KOICA) 관계자들은 캐나다의 해외 원조 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귀감이 된다고 말했다. 2011년 캐나다의 전 세계에 대한 원조 규모는 56억7900만 캐나다달러. 경제규모와 비교한 원조 수준을 보여주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은 0.31%로 한국(0.12%)의 3배에 가깝다. 캐나다는 이 원조예산 가운데 70%는 CIDA가, 나머지 30%는 재무부 국방부 보건부 환경부 등이 나눠 쓴다.

CIDA와 여러 정부부처가 동시에 해외 원조를 하고 있지만 서로의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는 게 캐나다 원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재무부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를 통해 이뤄지는 다자원조만 담당하고 나머지 정부부처는 민주주의, 안보와 관련된 원조활동만 맡는다. 원조 전문기관인 CIDA는 아동, 교육, 보건 등 나머지 일반적인 원조 사업을 총괄한다. 에드먼드 웨가 CIDA 모잠비크 사무소장은 “처음 원조 시스템을 만들 때부터 CIDA와 정부부처, 비(非)정부 참여자의 권한을 확실하게 나눴다”며 “중복사업 없이 원조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KOICA와 정부 중앙부처, 지자체의 원조 사업이 중복되면서 원조 효과가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모잠비크만 봐도 KOICA가 마니사 지역에 ‘새마을 농업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중앙부처가 인근 지역에 농업훈련원을 또 짓고 있다. 이나시우 치아구 농업부 기술지도 과장은 “중앙부처 사업은 현지에 상주하는 전문기관을 통하지 않다 보니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웨가 소장은 “원조 시너지 효과를 높이려면 원조 체계를 일원화하고 여러 사업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마니사·이냠바느=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