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준 후보자는 누구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왼손에는 항상 지팡이가 들려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들어설 땐 비서의 도움이 필요하다. 지팡이를 오른손에 옮긴 뒤 왼손으로 난간을 짚어야 계단을 오를 수 있다. 양복에도 운동화를 신는다. 24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그는 장애인들에게 ‘살아 있는 신화’다.
○ 50여 년 ‘법과 원칙’ 법조계 원로
김 후보자는 22세이던 1960년 대구지법에서 최연소 판사로 법복을 입었다. 이후 서울가정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 40년 동안 법관 생활을 한 원로 법조인이다.
김 후보자는 변호사 생활 12년을 포함해 50여 년 동안 법조인으로 지내면서 일상생활에서의 법치 확립을 강조했다. 2010년 인터뷰에선 “법을 안 지키면 손해를 보는 사회가 올바른 정의사회”라고 말했다.
청소년이나 장애인을 위한 활동도 활발히 했다. 서울가정법원장 시절 비행청소년과 사회지도자를 연결하는 소년 자원보호자 제도를 만들었고,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 경기 양주시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서 비행청소년 선도 활동을 했다.
김 후보자는 24일 지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 면에서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니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법률 이론에 해박한 ‘사법적극주의자’
김 후보자가 서울지법 판사로 일하던 1963년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일은 큰 화제가 됐다. 송 전 총장은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선거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써 구속됐는데 25세였던 3년차 법관이 서슬 퍼런 군부정권에 반기를 든 일대 ‘사건’이었다.
대법관(1988∼1994년)으로 일할 때도 김 후보자의 판결은 주목을 받았다. 1994년 생수판매업체가 보건사회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그는 “내국인에게 생수 판매를 제한한 고시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10년간의 법적 분쟁이 끝나고 국내에서도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판결을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로 꼽았다.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법 관련 사건에선 다소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도 있다. 밀입북 혐의로 기소된 고 문익환 목사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고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을 반국가단체로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내렸다. 또 노동조합법의 제3자 개입금지 규정에서 제3자의 범위를 가장 폭넓게 인정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헌법재판소장 시절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결정들을 이끌어 냈다. 이 시기 △과외교습 금지 △제대군인 가산점 부여 △동성동본 금혼제 등이 모두 위헌 결정이 났다.
김 후보자가 1994년 헌법재판소장 첫해 자신과 부인, 두 아들을 포함해 공개한 재산이 29억3348만 원이었다. 1975년 할머니가 물려준 유산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674m² 규모의 대지도 포함됐다. 2000년 퇴임 당시에는 재산이 30억 원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이후 고문변호사 수입 등으로 재산이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지체장애로 군 면제를 받았다. 장남과 차남도 각각 신장·체중, 질병(통풍)으로 면제를 받아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채널A 영상] 김용준, 두 아들 모두 병역 면제…체중 미달, 통풍이 사유?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