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행’
-정희성(1945∼)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88세 때 그린 피카소의 ‘누드와 앉아있는 남자’.
나이를 잊은 도전이 특별한 천재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20일 101세로 타계한 일본의 시바타 도요 할머니는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다. 이 책은 150만 부 넘게 팔렸고 평범한 할머니는 세계 최고령 시인의 영예를 얻었다. 정희성 시인이 들려주듯, 칠순 넘긴 사람에겐 ‘쉰일곱’이 참 젊다. 하물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나무가 보기엔 새해가 되면 반복되는 인간의 나이타령이 엄살처럼 들릴 것이다. 산신령 다 되어가는 태백산 주목의 눈에야 다들 참 좋은 때로 보일 것이다.
생물학적 나이야 누구든 피할 도리 없겠으나 이제부터라도 마음만은 조로하지 않도록 챙길 일이다. 올해 몇 살이 됐든, 지금 나이가 ‘가장 좋을 때’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고미석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