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사이트서 만나 1인2역… 임신까지 시키고 연락끊어
인천에 사는 A 씨(26·여)는 지난해 11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학병원 의사’라는 여성을 알게 됐다. 카카오톡으로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친해져 언니로 불렀다. 같은 달 28일에는 언니가 동료 의사 선배라며 남자를 소개해 줘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그런데 남자는 곧 돈타령을 하기 시작됐다. “지갑을 잃어버렸다” “교수 접대를 한다”며 10차례에 걸쳐 300여만 원을 빌려갔다. “곧 갚겠다”던 남자는 이후 전화를 안 받는 일이 잦아졌다. A 씨는 주선해 준 언니에게 카카오톡으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언니는 ‘요즘 선배가 바쁘니까 이해하라’고 답신을 보냈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때까지 언니는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언니는 ‘선배가 췌장암 3기 확정을 받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몇 시간 뒤 남자가 연락해 와 걱정 말라며 오히려 A 씨를 위로했다. 남자가 대견해 보였다. ‘꼭 나아서 결혼하자’고 약속도 했다.
A 씨는 친구의 휴대전화를 빌려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화를 걸어봤다. 남자는 받지 않았고 언니는 통화 중이었다. 남자에게 걸었던 전화를 끊자 언니의 휴대전화 연결 신호음이 들렸다. 남자가 통신회사의 ‘투넘버 서비스’(한 개의 휴대전화에 두 개의 전화번호를 등록하는 것)를 이용해 1인 2역으로 ‘언니’ 행세를 한 것이다. 남자가 알려준 이름과 나이도 모두 거짓이었다. A 씨는 수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