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모털리티/캐서린 메이어 지음·황덕창 옮김/400쪽·2만 원·퍼플카우
2050년이면 세계 인구는 10명 가운데 4명이 60세 이상이 된다고 한다. 노년의 초입을 상징하던 환갑이란 나이가 중년(中年)이 된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91세 프레데리카 씨(가운데 사진)는 사진작가인 손자의 도움으로 이 앙증맞은 사진 한 장을 내놓고 ‘젊은 할머니’의 아이콘이 됐다. 대표적 어모털족인 휴 헤프너 플레이보이 창업자와 배우 메릴 스트립, 가수 엘턴 존(왼쪽 사진 왼쪽부터)과 발랄한 패션을 즐기는 할머니들(오른쪽 사진)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연합뉴스, 엘세메날·어드밴스트스타일 제공
솔직히 식상하다.
한 광고가 유행시킨 이 한마디는 언제부턴가 대단한 금언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좋은 말이다. 나이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어르신들, 멋지다. 하지만 반대로 ‘아해(?)’들이 나이를 무시할 때도 그런 입장을 고수할 자신이 있나. 지난해 대선에서 50대 선거 돌풍의 근원은 ‘젊은 세대를 향한 항변’이 아니었던가. 유리할 때만 “나이는 상관없다”고 떠들 거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궤변이다.
더 나가 볼까. ‘어모털족(族)’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단 논리도 맘에 안 든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남성은 젊음에 집착해 어린 여성과 화려한 패션을 추구한다. 죽음의 공포를 지우려 은퇴를 미루고 일에 열중한다. 어릴 적 취향을 지속해 세대 간 소비성향의 간극이 무너진다. 그래, 앞뒤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게 다 어모털리티 탓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도 발정 난 노인네는 딸 같은 처자를 탐했다. 여성 선구자들은 어느 시대건 통념을 걷어찼다. 그럼 선덕여왕이나 클레오파트라도 어모털족이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어모털리티는 의외의 괴력을 발휘한다. 이 책은 흔해빠진 선언서 나부랭이와는 결이 다르다. 언어의 장벽에 갇혀 현실을 비틀고 곡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는다. 영미 시사주간지 ‘타임’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기자로 경력을 쌓은 저자는 현장 취재라는 특기를 살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적확하게 되짚는다. 책은 결코 우리 모두 어모털리티족이 되자고 부르짖는 게 아니다. 이미 21세기의 시대적 가치는 재편되고 있다. 이 조류에 응하건 응하지 않건 우리는 현 상황을 냉철히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세네제닉스(Cenegenics)’가 좋은 사례다. 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노화관리 의료기관’이란 이곳은 영양 관리와 운동을 바탕으로 ‘호르몬 최적화’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호르몬 최적화란 신체에 맞는 호르몬의 균형점을 찾아 중장년층 고객도 젊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배에 굵은 식스 팩이 드러난 70대 할아버지, 육상선수처럼 군살 없는 60대 여성을 모델로 내세운 세네제닉스는 현재 엄청난 속도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젊음 유지에 사활을 건 어모털족 자체가 아니다. 몸매를 개조하려고 한 달에 몇천 달러씩 쏟아 부을 수 있는 계층이 형성된 소비산업구조, 나이 든 사람이 외양 가꾸기에 열광하는 걸 주책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 나아가 과학과 종교까지도 이런 취향에 맞춰져 가는 ‘변화의 현재진행형’이 관건이다. 이 책이 어정쩡한 트렌드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고 썩 괜찮은 사회 분석서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맥락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모털리티의 매력뿐만 아니라 문제점도 균형감 있게 담아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