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평양회견 김광호씨 사례로 본 ‘탈북브로커의 도움과 횡포’
○ 정착금부터 브로커에게 빼앗겨
2010년 4월 탈북자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정착 교육을 받고 나선 김 씨 부부 앞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건 중국에서 이들을 데려온 소위 ‘탈북 브로커’. 그는 중국에서 약속한 대로 1인당 250만 원씩 모두 500만 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함께 온 탈북자들은 순순히 250만 원씩 줬다. 중국에서 쓴 계약서엔 하나원을 나올 때는 250만 원, 지불을 늦추면 최대 400만 원까지 내겠다고 돼 있었다.
김 씨는 다른 탈북자와 달리 200만 원씩만 주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하지만 브로커는 나머지도 달라며 재판을 걸었고 법원은 지불이 늦어졌으니 계약서대로 1인당 400만 원씩 주라고 판결했다. 김 씨 부부는 항소했지만 브로커가 김 씨의 주택보증금마저 차압하려 하자 결국 남한을 떠났다. 목숨을 걸고 ‘자유의 품’을 찾아왔지만 결국 ‘자유’를 포기한 셈이다.
○ 브로커는 탈북 도우미? 사기꾼?
김 씨는 얼핏 보면 피해자로 보이지만 브로커를 가해자라고만 보기 어려운 게 탈북자 문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탈북자 입국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이런 브로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브로커가 탈북자를 입국시키는 데는 돈이 든다. 중국에서 숨겨 주고 먹여 줘야 하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데 드는 교통비며 심지어 제3국에서는 벌금도 내야 한다. 운이 나빠 체포되면 감옥에 가야 하고, 김 씨처럼 한국에 들어온 뒤 약속한 돈을 안 주고 잠적하면 끊임없이 찾아내 독촉해야 한다.
▼ 北, 탈북자 회유 전문 공작기관까지 만들어 ▼
문제는 비용이 적정한가이다. 이동수단과 통로가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100만∼250만 원 선이라는 말이 많다. 250만 원을 넘기면 탈북자 사회에서 ‘악덕 브로커’로 분류된다.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300만∼400만 원을 요구하는 브로커도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거액을 요구한 후 받지 못하면 여성의 경우 성폭행까지 하는 브로커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는 대부분 이 비용을 지불하고 매우 어렵게 정착생활에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점차 자리를 잡는다.
○ 재입북은 절망 끝 결단 아닌 새로운 희망?
김 씨 부부가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단순히 브로커의 횡포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그 나름대로 영악한 사람이다. 그는 과거 수차례 중국을 넘나들며 밀수를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체포돼 처벌받기 직전 약혼녀를 데리고 탈출했다.
김 씨 부부는 공식 결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에서 임대주택을 각각 받았다. 김옥실 씨는 곧 임대주택을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받아 김광호 씨와 살림을 꾸렸다. 이후 이들은 2년 동안 여기저기서 돈을 벌었다. 보통 재입북하는 탈북자는 임대주택은 국가에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되찾은 뒤 시중은행 및 지인 등에게서 최대한 돈을 빌려 나간다. 김 씨도 그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남한 생활 2년이면 최소 3000만 원 안팎의 재산을 모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에서 3000만 원은 엄청난 돈이다. 50만 원이면 4인 가족이 어렵게나마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북한 실정을 감안하면 이들은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수중에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 북한의 새로운 탈북자 정책
과거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에 봉착해도 그냥 버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탈북자를 회유해 재입북시키는 수법으로 남쪽으로 간 탈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돌아와 남한 사회를 비난하면 남쪽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을 막을 수 있고 탈북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를 위한 전문 공작부서까지 생겨나 북한의 가족을 동원해 남한의 탈북자를 회유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김 씨 부부를 회유한 탈북 여성이 있지만 수사 당국이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자 사회에선 앞으로 이런 재입북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탈북자 재입북 북한 정권에 이롭지만은 않아
하지만 탈북자들이 계속 돌아오면 북한으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숙 씨 귀환 때도 말로는 남쪽에서 온갖 핍박을 다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까무잡잡한 여자가 5년 만에 귀부인이 돼 나타났다”고 쑥덕댔다. 거기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몰래 숨겨 온 돈으로 잘살게 되면 주민 여론이 문제다. 그렇다고 처벌하면 용서를 강조했던 당의 정책에 큰 흠집이 생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때문에 최근 북한 당국에선 새로 회의를 열고 탈북자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되돌아오게 하지 말고, 어려움에 빠진 탈북자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꾀어 보낸다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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