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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세계 일류] 지문인식 분야 세계1위 ‘슈프리마’

입력 | 2013-01-28 03:00:00

LCD+CPU+와이파이 기능에 디자인 혁신까지




이 재원 슈프리마 사장은 “경쟁사보다 디자인과 기능에서 한 단계 나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한 끝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며 “앞으로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혁신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여파로 대기업들은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였다. 여러 해 붙들고 있던 연구과제들도 속속 접었다. 엔지니어들은 하루아침에 할 일을 잃었고, 실력 좀 있다는 사람들은 벤처기업으로 몰려갔다.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슈프리마 본사에서 만난 이재원 사장(45)은 그때를 돌이키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그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서 지능형 차량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한때 삼성의 신수종 사업이었지만 외환위기 와중에 매각되고 말았다. “국민이 낸 돈으로 공부했으니 창업을 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든지 학교에서 인재를 키우라”던 대학 지도교수의 얘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2000년 초 사표를 냈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동고동락하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의기투합했다. 그해 5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조그만 회사를 차렸다. 현재 지문인식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슈프리마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을 사업 분야로 잡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1년 만에 지문인식으로 바꿨다. 주민등록증 지문인식기에 들어가는 모듈(알고리즘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부품), 현관이나 출입구에 설치하는 지문인식기 등을 주력으로 삼았다.

“지문인식은 대기업이 달려들기에는 규모가 애매한 시장입니다. 독일과 스위스의 수많은 중소기업도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성공했거든요. 우리도 그 가능성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벤처 붐은 순식간에 사그라졌고, 투자자는 씨가 말랐다. 더욱이 정·관계와의 검은 유착관계 형성으로 불거진 이른바 ‘윤태식 게이트’에 지문인식업체 패스21이 연루되는 바람에 관련 기술을 갖고 있던 기업들은 싸잡아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기술력을 믿었다. 2002년 8월 지문인식 알고리즘 세계 경연대회에서 아시아 1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슈프리마 직원들이 경기 성남시 정자동 연구실에서 지문인식기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 기기에 들어가는 슈프리마의 지문인식 모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남=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해외로 눈을 돌렸다. 보따리장사처럼 제품을 들고 전시회를 돌아다녔다. 인터넷 검색광고에도 공을 들여 인지도를 높였다. 해외 검색사이트에 ‘지문(fingerprint)’이라고 입력하면 슈프리마가 먼저 노출되게 했다. 요즘은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로서는 생소한 시도였다. 슈프리마를 알아보는 바이어가 하나둘 늘어났다. 2005년에는 제품 수출국이 70개로 확대됐고, 그해 모듈 판매량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이 사장은 성이 안 찼다. 세계시장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려면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디자인과 기능에 주목했다. 네모나고 둔탁한 비슷한 기기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컬러 액정표시장치(LCD)를 넣은 제품을 내놓고, 중앙처리장치(CPU)를 2개 넣어 성능을 높인 지문인식기, 무선인터넷(와이파이) 기능을 적용한 제품도 선보였다.

“이 시장은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디자인과 기능이 혁신적이라도 제품의 안정성, 신뢰성이 떨어지면 먹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확실히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예상대로 2003년 7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2년 550억 원(추정)으로 늘어났다. 매출의 약 70%는 해외에서 얻는다. 영업이익률도 30%대에 이른다. 미국의 보안장비 전문잡지 A&S매거진은 작년 4월 세계 50대 보안기업을 선정하면서 생체인식 업체로는 슈프리마만 포함시켰다. 해외 전시회에서 중국 업체들이 슈프리마 제품의 모방품을 내놓을 만큼 디자인도 인정받고 있다.

중소기업의 큰 고민 중 하나는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다. 그러나 슈프리마에는 대기업에 다니던 연구원들도 옮겨온다. 삼성전자에 다니다 2010년 슈프리마에 합류한 박보건 수석연구원은 “개발자가 알고리즘부터 디자인, 테스트,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관여할 수 있어 성취감이 크다”고 말했다.

지문인식 한 분야에 집중했던 사업도 점차 얼굴인식 등 생체인식 전반으로 넓혀나가고 있다. 이 사장은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만 다른 곳에 삽질을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슈프리마를 알리는 것이다.

“일류상품이란 결국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는 상품이잖아요. 슈프리마를 더욱 대중화하기 위해 또 다른 혁신을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성남=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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