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진 베이징특파원
1992년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온 한국과의 수교도 이런 배짱의 산물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과 혁명 동지인 북한 김일성에게 극진했다. 김일성이 언젠가 중국을 방문하자 베이징(北京) 역에서 그를 맞이하고 환영 연회 및 회담, 시찰 등 모든 일정을 동행했다. 북한도 4차례나 방문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외국 방문지도 북한이다.
1975년 4월 암 투병 중이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베이징 305병원에서 김일성을 마지막으로 만난다. 저우 총리는 김일성에게 배석한 덩샤오핑을 가리키며 “무슨 일이 있으면 덩샤오핑을 찾으라”라고 말했다. 아끼는 후계자에게 혈맹(血盟) 북한을 특별히 당부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사표(師表)는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을 철저하게 따를 것을 다짐한다. 취임 후 첫 지방 시찰로 개혁 개방의 첫 문을 연 광둥(廣東) 성을 찾아 그의 동상에 헌화했다. 말과 행동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화권 언론과 학자들은 시 총서기가 온화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만 기개가 넘치고 배짱이 있다고 말한다. 시진핑 시대는 현상 유지에 집착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나오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2009년 서방의 중국 인권 비판에 대해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거칠지만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3일 시 총서기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보낸 특사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가 한반도 평화 안정에 필수 요건”이라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을 행여 자극할 수 있는 말이라면 공개적으로 일절 하지 않은 후진타오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북한은 시 총서기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인 24일 제3차 핵실험 진행 계획과 6자회담 ‘사멸’을 선언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국가적 중대 조치를 결심했다”라고 하는 등 위협 발언도 이어졌다.
이헌진 베이징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