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천동 낙성대에서 태어난 강감찬 장군역동적 기마상은 왜 수원 광교공원에 있을까
경기 수원시 경기대 정문 인근 광교공원. 광교산으로 오르던 등산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원 안의 한 동상을 이리저리 관심 있게 쳐다본다.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948∼1031).
조각가 김영준 씨가 조각한 이 동상(사진)은 높이 4.5m로 좌대 높이(5.7m)까지 포함하면 10m가 넘는다. 청동 주물상의 무게만 5t의 역동적인 기마동상이다. 말에 올라탄 강감찬은 긴 칼을 왼쪽에 차고 오른손은 높게 치켜든 채 당장이라도 적진을 뚫고 나갈 듯한 기세다.
강감찬은 아직도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으로 수많은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고려사’ 열전에 나온 장군의 탄생 일화를 보면 ‘한 사신이 한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 찾아보게 하니 별이 떨어진 집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강감찬이었다’고 적고 있다. 강감찬의 탄생지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와 연계된 설화다. 낙성대에는 1997년 10월 강감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이 있을 뿐 아니라 사당과 사적비도 있다.
그렇다면 강감찬 동상이 연고도 없는 수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감찬과 수원의 인연을 굳이 찾는다면 수원과 인접한 화성의 서원에서 과거 공부를 2년간 했다는 것이 전부다.
광교공원의 동상은 낙성대 동상보다 26년 빠른 1971년 6월 지금의 장소가 아닌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팔달산 중턱에 세워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애국조상건립위원회’를 만들었고 전국 각 시군에 위인의 동상을 세워 그 정신을 본받도록 지시해 연고도 없는 수원에 자리 잡았다. 제막식은 김종필 국무총리가 참석했을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