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들 ‘이백이’는 장애아동 치료사… 누워만 있던 지연이를 뛰게하다
28일 울산학성동물병원에서 지적장애 1급인 김지연 양(왼쪽)이 이은우 원장과 함께 강아지의 몸길이를 재고 있다. 김 양은 ‘동물매개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크게 호전되고 있다. 울산=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28일 울산 중구 성남동 울산학성동물병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벽에 붙은 작은 방에서 이은우 원장(43·여)이 흰색 몰티즈 ‘꽃님이’를 잡아 달라고 부탁하자 김지연 양(13)은 몸을 꼬며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어…, 가만(가만히). 가만(가만히) 있어.”
“꽃님이는 36cm네. ‘미니’는 지연이가 재 줘.”
김 양은 “알았어”라고 말하고 줄자를 서툴게 쥐었다.
○ 사람을 치료하는 동물병원
울산의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4명은 강아지 3마리의 몸무게와 키를 재고 그 수치를 그래프에 표시하면서 얼마나 컸는지 비교했다. 울산시 강북교육지원청이 지원하는 ‘특수교육대상자 방과후 교육활동’의 일부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성장’이라는 개념과 숫자 감각을 익힌다. 이 원장은 “여러분들도 이렇게 크는 거예요,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라는 말로 교육을 마무리했다.
김 양의 어머니 고명숙 씨(52)는 “생후 4개월부터 언어치료, 음악치료 다 해봤는데 여기서 효과를 크게 봤다”고 말했다. 그는 ‘누워 있으려고만 하고 제대로 걷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던 아이가 지난해 3월 이 동물병원에 다니면서부터 잘 걷고 상황에 맞는 말을 구사할 줄 알게 됐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려줬다. 버스 계단을 제 힘으로 오르지 못하는 딸이 야외 체험활동 중 5년차 전문 도우미견 ‘꾸미’의 목줄을 잡고 잠시 뛴 것은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 교육받은 개는 다르구나, 했어요. 지연이도 집에서 항상 꾸미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어머니와 얘기하는 동안 김 양은 ‘동물매개치료 도우미 동물과정’을 이수한 경력 4년차 푸들 ‘이백이’와 놀았다. 이 병원에는 이런 전문 도우미견과 고양이, 도우미 후보견이 모두 15마리 있다.
○ “저도 모르게 빠졌습니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수감자, 홀몸노인, 일반 환자들이 동물과 어울리면 기적처럼 치료효과가 높아지고 정서가 안정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동물매개치료라는 낯선 개념이 국내에도 도입되고 있다. 2010년에는 동물매개치료사 자격시험이 생겼지만 아직은 장애인시설에서 일회성으로 활용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장애아 특수학교에 개들을 데리고 가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항상 주눅 들어있던 특수 아동들이 신이 나서 뒷정리까지 앞다퉈 하려는 모습을 보고 사명감이 생겼다. 교육학 자료를 탐독하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일본어도 못하면서 자비로 비행기 표를 사서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갔다. 이 원장은 동물병원을 떠나 장애인특수학교에 교사로 취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두 사람은 ‘그냥 우리가 동물매개치료센터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건축비용 7000만 원은 성 회장이, 사단법인 설립비용 5000만 원은 이 원장이 냈다. 동물매개치료에 그렇게 빠져든 이유를 묻자 성 회장은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고, 이 원장은 “아이들이 확확 나아지는 게 눈에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수의학 박사의 동물매개치료센터는 지난해 장애아들과 200시간 이상을 함께했다. 3월부터는 2층을 통째로 치료공간으로 쓸 예정이다.
○ 개와 함께 마라톤 도전, 완주!
성 회장과 이 원장의 치료 프로그램은 4명가량의 장애아가 한 조를 이뤄 도우미견과 함께 50분씩 20회 이상 실내외 활동을 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성 회장은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자폐아뿐 아니라 지적장애아나 소아마비를 앓은 아이도 보통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는다. 놀림감이 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 효과가 작다. 그럴 때 동물은 최고의 선생님이다. 어른들이나 다른 학생들 앞에서는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아이도 ‘강아지한테 책 좀 읽어 달라’는 부탁은 거부하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어른의 관심을 확인하려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은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책임감을 느끼고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배워 의젓해진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은 계모 같은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고 씨는 2011년 울산인권마라톤대회 5km부문에 딸과 함께 참가했지만 절반도 채 걷지 못했다. 김 양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진다는 느낌 탓에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딸의 상태가 호전되자 다시 도전하고 싶어졌다. 지난해 11월 같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다. 이미 마감이 지났지만 주최 측은 “등번호가 없어도 괜찮다면 참가해도 좋다. 개들과 함께 뛰어도 좋다”며 허락했다.
김 양을 포함해 동물매개치료를 받고 있는 장애아 4명이 등번호 대신 자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이 붙은 티셔츠를 입고 개들과 함께 5km를 달렸다. 성 회장은 결과보고서에 ‘처음에는 신발이 이상하다며 걷기 싫어했지만 완주할 수 있었다. 달리기도 많이 하고 아이들과 거리도 유지했다’고 적었다.
울산=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