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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영식]외교관을 춤추게 하려면

입력 | 2013-01-30 03:00:00


김영식 국제부 차장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오종민 외교통상부 서기관이 주온두라스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2010년 10월 어느 날의 일이다. 카르스텐 슈나이덴 주온두라스 독일 공사 관저에서 외교단 초청 행사가 열렸다. 오후 10시경 돌연 디스코 타임이 시작됐다. 참석자들이 엉거주춤할 때 마룬파이브의 ‘파티 록’이라는 곡에 리듬을 타던 그는 무대로 나가 신나게 춤췄다.

“그야말로 한방에 온두라스 외교단과 가까워졌습니다.”

다음 날부턴 모든 게 변했다. 현지 미국, 일본 대사관에 전화를 걸면 공문부터 보내라던 친구들이 “받아 적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친김에 일본, 대만 대사관의 또래 외교관과 모임을 만들어 정보교류에 나섰다. 온두라스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미리부터 끼를 발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오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 그러다 보니 외교 행사에 참석하는 일도 1년에 서너 차례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외교부가 운영하는 이른바 ‘3인 공관’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대사와 외교관 2명, 현지인 행정원 2, 3명으로 구성된 3인 공관은 174개 해외 공관의 20%에 해당하는 34개. 별로 나을 게 없는 5인 이하 소수 공관으로 범주를 바꾸면 전체의 61%인 105개에 이른다. 우수한 인력들이 이런 공관에선 행정, 총무, 예산을 비롯해 태극기를 올리는 반복되는 일과에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소비한다. 박지성을 선수로 뽑아놓고 물주전자를 나르게 하는 셈이다.

또 다른 3인 공관인 코스타리카에 근무했던 한 외교관의 얘기다. “주코스타리카 미국 대사관은 가장 작은 미국 공관이라고 하는 데도 70여 명이 근무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수준이었다. 일본은 15명, 중국도 18명이 근무했다. 일당백(一當百) 정신으로 이들과 경쟁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쉽지 않았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BP는 최근 내놓은 장기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이 셰일가스를 포함한 석유류 생산량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앞질러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내건 미국의 외교전략 변화에는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골치 아픈 중동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반영돼 있다. 미국이 떠나는 중동의 빈틈을 중국이 채우고 있다. 달라지는 아프리카 중동 지역 환경에서 소수 공관 시스템으로 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까. 대외경제 의존도가 96.9%에 이르는 한국의 우선 과제를 재점검할 때다.

1990년대 초반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목표 아래 확산된 3인 공관 체제는 한류와 한국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커지는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외교 역량을 고갈시키는 이런 3인 공관을 없애려면 인력 증원이 필요한 데도 정작 국내에선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없이 외교와 통상을 분리하는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나폴레옹 처리 문제를 논의하던 빈 회의는 춤추다 날이 샜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외교관이 춤을 춰야 각종 정보가 들어온다. 과거 선배 외교관들은 ‘3S 외교관’으로 불렸다. 외국어를 제대로 못해 방긋 웃고(Smile) 조용해서(Silent) 쳐다보면 이미 자고 있더라(Sleep)는 것. 외국어 능력과 끼로 뭉친 신세대 외교관들은 이들과 분명히 다르다. 문제는 소수 공관에선 이런 끼를 펼칠 물리적 시간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하루에 치여 사는 이들에게 왜 국가의 장래를 이끌 외교 전략을 세우지 못했느냐고, 외교 전략가로 성장하지 못했느냐고 훗날 물어 무엇하리.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