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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현진]진심만 통하는 스네이크 컨슈머

입력 | 2013-01-30 03:00:00


김현진 산업부 기자

기자가 속한 동아일보 산업부 유통팀은 ‘비싼 팀’과 ‘싼 팀’으로 나뉜다. 유명 패션·뷰티 브랜드 등 백화점에서 주로 취급하는 고급품을 담당하는 팀이 ‘비싼 팀’,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식품 등 가격 경쟁력을 중시하는 업계를 주요 출입처로 하는 팀이 ‘싼 팀’이다.

팀원들끼리 편의상 붙인 이 애칭은 출입처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종종 대화 소재가 되곤 한다. 그런데 이 팀 간 개념 규정에 최근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가 최근 “이제 백화점은 아웃렛(대형할인점)사업에 다걸기 하는 형국이니 싼 팀에 속해야 될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부터다. 자조적인 농담이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백화점업계 메이저 3사는 올해 15년 만에 처음으로 신규 점포를 열지 않는 반면, 아웃렛은 4개나 새로 열기로 했다.

아웃렛 업태에 관심이 쏠린 형국은 불황, 저성장 기조, 소비 트렌드 변화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최근 매출이 급감한 한 수입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여전히 과시적이면서, 자린고비 같은 행태도 보이는 요즘 소비자들의 속을 정말 모르겠다”고 말한다. 확실한 것은 소비자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동아일보는 진화한 신(新)소비자들을 ‘스네이크(SNAKE) 컨슈머’로 정의했다. 뱀처럼 영리하고(Smart), 서로 연대하며(Network), 적극적이고(Active), 경제적인(Economical) 한국형(Korean style) 소비자라는 의미다.

소비자의 변화는 한국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글로벌 트렌드정보사 트렌드워칭닷컴이 올해 가장 큰 소비자 트렌드로 내세운 화두는 ‘커스트오너(custowners)’다. 고객(customer)과 소유자(owner)를 결합한 표현으로 소비자들이 제품을 단지 구입하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에 참여한다든지, 감정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방식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소유’하려 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보사 측은 이런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어필’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명하고 친절한 휴머니스트적 브랜드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한 예로 브라질의 환경 친화적 화장품 브랜드 ‘내추라(Natura)’는 기업 실적을 공개하는 결산보고서에 ‘반성문’을 쓴다. 2011년 보고서에는 ‘물 소비를 생산 단위별로 3% 줄이겠다고 한 목표는 달성 실패. 오히려 전년 대비 14% 증가’, ‘직원당 평균 교육 시간을 100시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달성 실패’ 등과 같은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브랜드 측은 일부러 결점을 드러내면서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실천 의지를 다진다.

최첨단을 걷는 시대에 유통업계가 가져야 할 새 경영 덕목이 ‘휴머니스트가 되라’는 것이라니 김빠지는 결론일까. 하지만 물질과 마케팅의 과잉 속에서 불신을 쌓아온 소비자들은 결국 진심 하나만 믿게 된 것 같다. ‘스네이크 컨슈머’가 영악한 적이 될 것인지, 영리한 동반자가 될 것인지도 결국 이 진심에 달렸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