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총리후보 전격 사퇴]■ 金 총리후보 사퇴 막전막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나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29일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닷새 만에 낙마하기까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김 후보자 측의 표정은 이런 순서로 변해갔다.
○ 부동산 투기 의혹이 결정타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여권 내부에서는 “설마 (야당이) 김 후보자를 낙마시킬 수 있겠느냐”는 기류가 강했다. 야당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이어 김 후보자마저 낙마시키려 할 경우 자칫 새 정부 발목잡기로 비칠 수 있고, 김 후보자가 장애의 한계를 극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은 28일 밤에도 “야당이 김 후보자를 잡으려다가 ‘늑대 피하다 호랑이 만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김 후보자는 28일 오후 새누리당-인수위 연석회의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취재진에 “(각종 의혹에 대한 자료가) 곧 준비될 거야”라며 청문회 통과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때도 속으로는 앓고 있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계속 터져 나오자 자진 사퇴하기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28일 동아일보와 채널A가 단독 보도한 경기 안성의 임야 7만3000m²(약 2만2000평) 의혹이 결정타였다. ‘이 땅이 모친의 증여가 아니라 직접 둘러보고 법원 서기와 함께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한 최고위원은 “김 후보자가 비공개 회의에서 ‘병역 같은 문제는 쉽게 해결되는데 안성 땅 문제는 좀 머리가 아프다’며 걱정을 크게 했다”고 전했다.
○ 존경받는 법조인의 자존심 무너져
김 후보자는 29일 건강관리를 위해 꾸준히 해오던 수영을 건너뛰었다. 고심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그는 평소보다 1시간 반가량 늦은 오전 8시 반경 서울 종로구 무악동 자택을 나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총리 후보자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오전 내내 집무실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김 후보자는 법질서사회안전분과 업무보고(오후 3시) 직전에 박 당선인을 만나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당선인의 만류에도 김 후보자의 결심은 확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6시 38분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발표가 있다’는 문자메시지가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그때서야 후보자의 사퇴설이 돌았다. 예고됐던 오후 7시 브리핑이 한 차례 보류되자 의구심은 더욱 커져 갔다. 오후 7시 8분 윤 대변인이 김 후보자의 자진 사퇴 사실을 발표했다.
김 후보자는 결국 언론의 의혹 보도 때문에 물러나면서 언론에 대한 불쾌감을 토로했다. 그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 인사청문회가 원래의 입법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고 윤 대변인이 전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동아일보와 채널A의 검증 보도 등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은 적이 없다.
윤 대변인은 “본인이 공인이니깐 적절한 시기에 구체적으로 (해명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역임하며 평생 존경받는 법조인이었던 그의 무너진 자존심은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
▶ [채널A 영상] 단독/“청와대에 김용준 후보자 검증 협조 요청 없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