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실검증 ‘박근혜 인사스타일’ 상처
씁쓸한 퇴장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던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29일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마중 나와 있는 모습. 인수위사진기자단
자신의 재산을 확인하지 못한 김 후보자도 불찰이지만 임명된 후보자의 재산 형성과정은 첫 번째 확인해야 할 검증 사안이라는 점에서 당선인의 부실한 검증이 화를 불렀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본말이 전도된 ‘보안’ 인선
‘보안’을 강조하느라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본말이 전도된 인사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게 정치권을 비롯해 당선인 주변에서까지 제기되는 한결같은 지적이다.
일단 누가 인선 작업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인사가 없다. 당선인 측은 “후보를 검증하는 별도의 팀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선인 비서실장, 대변인, 정무팀장 등 핵심관계자들도 한결같이 “누가 하는지 모른다”고들 말한다.
지금 인선 담당자로 언론에 드러난 사람은 이재만 전 후보 보좌관뿐이다. 이 전 보좌관은 매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비서실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과 밤에는 어디에 있는지 비서실 구성원들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인선작업설, 당선인 사적 비선라인 가동설 등 갖가지 소문만 풍성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검증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이 때문에 당선인 주변에서조차 “당선인이 김 후보자가 헌재소장과 대법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당시 인사청문회를 통해 제대로 검증을 거쳤다고 착각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나올 정도였다. 김 후보자는 1994년 헌재소장 임명 당시 재산은 공개했으나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전이라 공식 검증은 거치지 않았다.
박 당선인은 김 후보자를 임명하기 전 여러 가지 의혹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김 후보자는 아들의 병역 문제를 비롯해 문제될 만한 부분을 스스로 밝히며 직접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이 당선인이 자체 검증을 거친 뒤 최종 확인하는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당선인이 이 과정 자체를 검증과정으로 여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후자라면 소홀한 검증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현 정부의 인사 파일을 박 당선인에게 모두 넘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정부의 인사풀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인사를 발탁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인사검증팀이 새로운 발탁 인사를 검증할 때 청와대나 정부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검증을 진행한 같다”며 “보안이 그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상처 입은 박근혜 리더십
29일 특별사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던 당선인으로서는 더이상 각을 세우기가 여의치 않아졌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박 당선인 스스로가 인사 때문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초청 토론에 출연해 “현 정부의 최대 실책은 인사문제”라며 “현 정부에 대한 불신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회전문 인사 등 인사문제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수위에서 분과별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유례없이 정책 현안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는 등 각종 작업에 속도를 내려는 찰나 급제동이 걸린 것도 당선인에게는 타격이다.
당선인의 한 측근은 “선거 때 언론의 검증 칼날이 상대적으로 약하던 시기에 진행했던 보안 위주의 인사시스템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나라 공직자의 검증은 자질보다 도덕성에 우선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