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주간
한 법조인은 채널A 생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자가 법조계에선 “공사다망(公私多忙)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 있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2명이 한방을 쓰는 바람에 셋이서는 전화통화 내용까지 들을 수 있었다. 김 후보자 가족이 보유한 토지의 긴 목록으로 보건대 이 땅들을 둘러보고 사들이고 관리하고 되팔자면 사적으로도 바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 후보자와 함께 땅을 보러 안성에 간 적이 있다는 법원 서기의 증언도 나왔다. 검증 과정에서 법조계의 평판을 들어봤더라면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아들이 체중 미달과 통풍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나 부동산 거래 목록은 공부(公簿)만 들춰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김 후보자가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했으니 인사청문회를 거쳤다고 착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전(事前)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김 후보자는 역량과 건강 측면에서도 따져볼 구석이 많았다. 그는 19세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22세 때부터 평생 법관으로만 살았다. 행정 경험이 없어 직접 각 부의 업무를 조정하고 통할하는 능력은 미지수다. 그는 고령(75세)에 거동이 불편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현장 방문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청력이 약해 보청기를 끼고 있어 국회 답변이나 국무회의 주재도 걱정스러웠다. 차기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된 뒤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배석한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이 단상에 올라가 부연 설명했다.
결정적 시기에 직언(直言)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박 당선인이 시급히 보완해야 할 점이다. 측근들은 모두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를 끄고 잠수(潛水)를 타기에 바빴다. 박 당선인의 일인독주(一人獨走) 인사에 한마디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촉새’로 찍혀 눈 밖에 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 당선인이 내놓은 정부조직 개편안이나 인사 스타일을 보면 아버지와 닮은 대목이 많다. 박정희를 알면 박근혜가 보인다는 말이다.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든가 경제부총리의 부활도 그렇지만 국무총리 인선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박 대통령의 사전(辭典)에 국무총리와 권력을 나누는 제도는 있을 수 없었다.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었다. 박 당선인도 결국 2인자로 크지 않을 ‘상징 총리’나 ‘의전 총리’에 집착해 널리 의견을 구하지 않거나 검증을 소홀히 여겼을 수도 있다.
박 당선인이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할을 하며 본격적으로 아버지의 정치를 배운 것은 유신 시대였다. 박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널리 의견을 들었지만 유신 이후에는 달라졌다. 그 시절에는 박 대통령의 결심이 서면 중앙정보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골치 아픈 일은 척척 정리해버렸다. 국회와 언론도 침묵했다.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정치에서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을 취한다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의 인선 방식은 때로 아버지보다 더 폐쇄적인 것 같아 걱정이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에서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이 지켜야”라고 한 발언도 설득과 소통의 리더십이라고 볼 수 없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