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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이름을 말하는 순간 나는 죽어요” 생명의 불꽃으로 울린 감동 미학

입력 | 2013-01-31 03:00:00

푸치니 ‘내 이름은 미미’ 음형




①현악사중주 ‘국화’ 시작부. ②‘라보엠’에서 미미가 ‘제 이름은 미미인데요’라고 소개하는 장면. ③‘마농레스코’에서 기진한 마농이 ‘내 곁으로 와주오’라고 부탁하는 부분 악보. 세 악보 모두 첫 다섯 음표가 반음계적으로 미끄러지듯 올라간 뒤 두세 음 위로 도약했다가 다시 한 음 떨어진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1926년 초연)에서 주인공 칼라프 왕자는 ‘내 이름을 누군가 알아내면 목숨을 빼앗겨도 좋다’는 내기를 겁니다. 전 세계의 민담과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금문(禁問)의 동기, 말하자면 ‘묻지 마 동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보다 30년 앞서 발표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여주인공이 이름을 밝히는 순간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음원제공 낙소스>

시인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첫 막 소프라노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는 여리고 병약한 여성을 표현합니다. 특히 ‘네, 저는 미미라고 불립니다만’이라고 노래하는 시작 부분의 반음계 상승 음형(音形)은 조심스러우면서 쓸쓸한 인상으로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여기서 미미의 운명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오페라보다 6년 앞서 푸치니가 작곡한 현악4중주 ‘국화(Crisantemi)’ 시작 부분에는 이 노래와 비슷한 음형이 나옵니다. 푸치니가 친우였던 사보이 공작의 죽음을 애도해 쓴 작품입니다. 두 곡 모두 서두의 다섯 음이 온음 또는 반음씩 서서히 올라가다가 여섯 번째 음에서 살짝 들린 뒤 내려오는 점이 비슷합니다.

푸치니

더 들어가 볼까요. 푸치니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라보엠’보다 3년 앞서 발표된 그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입니다. 두 작품은 생일이 같습니다. ‘라보엠’은 1896년 2월 1일, ‘마농 레스코’는 1893년 2월 1일 토리노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내일은 ‘마농 레스코’의 만 120세 생일인 셈입니다.

두 작품의 연관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농 레스코’ 4막에도 ‘국화’나 ‘내 이름은 미미’와 비슷한 음형이 등장합니다. 이 막은 연인과 함께 황야로 도망친 여주인공 마농이 기진함과 갈증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마농은 연인에게 있는 힘을 다해 ‘내 곁으로 와줘요’라고 말한 뒤 정신을 잃습니다. 이 음형은 이 막 곳곳에 등장합니다. 이는 푸치니가 병약함, 죽음, 애도를 그리는 데 사용해 온 ‘생명 소실의 동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음형을 미미의 첫 아리아 서두에 넣은 순간,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오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니정홀에서는 ‘라보엠’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는 갈라 콘서트가 열립니다. 소극장 무대와 대학 내 무대를 포함하면 일 년 내내 전국 어디선가 ‘라보엠’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 달은 없다시피 합니다. 국립오페라단도 지난해에 이어 12월 5∼8일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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