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특정업무경비의 진실
이 돈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면 400만 원 정도로 확 오른다. 대법원이나 헌재에서는 특정업무경비라고 부르는 돈이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도 이 돈을 부장판사의 100만 원같이 자기 용돈처럼 쓴다. 세금도 떼지 않는 400만 원이니까 어엿한 가정의 한 달 가처분소득에 해당할 만큼 큰돈이다. 그래서 좀 나눠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은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얼마씩을 연구관들에게 격려금으로 나눠주는 것이 관행이다. 한 번에 50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액수가 많아지면 평판이 좋아지고 적어지면 나빠진다.
결혼할 때 부인이 열쇠 몇 개 챙겨 오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대법관이나 헌재 재판관이라면 400만 원 정도는 주변이나 아랫사람들을 위해 호기 있게 다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일을 빡빡하게 시키면서도 그런 점에서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딸깍발이 판사’로 불린 어느 전 대법관은 대법관 취임 시 신고재산이 7000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연구관들에게 매달 20만, 30만 원씩 나눠줘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대다수는 액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쓴다. 조직과 남을 위해 쓰면 가점(加點)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감점(減點)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정업무경비에 굳이 유용이란 말을 쓰자면 그 돈은 유용이 예정된 돈이다. 연구관들에게 많이 나눠준다고 해서 유용이 아닌 것이 아니다. 앞의 부장판사도 연구관 시절 대법관들을 모시면서 그런 돈을 받았는데 밀린 외상 술값을 갚는 등 전부 용돈으로 썼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은 누구도 지킬 수 없는 기준을 이 후보자에게 들이댔다. 이 후보자가 공금을 횡령한 것이라면 거의 모든 법관이 공금을 횡령하고 있는 셈이 된다.
솔직하지 못한 청문회
이 후보자도 다소 비굴하게 대응했다.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게 있으면 사퇴하겠다는 말은 의원들의 추궁에 마지못해 한 말이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차라리 유용을 시인해 헌재소장이 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돈의 실상을 당당하게 밝히는 용기를 보였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기관의 수장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런 정도의 용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