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외국인 10만명 더 오면 고급 일자리 660개 생겨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경복궁을 둘러보고 있다.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좋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게 하려면 관련 규제를 풀고 서비스업을 지속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DB
서비스업의 규제 수준을 낮추면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다는 점은 역대 정권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발하는 이들의 ‘표심’을 우려한 정치권과 진보좌파 성향의 시민단체, 이익집단의 반대로 투자개방형 병원, 고급 학교 설립 등 핵심 과제는 줄줄이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에 어느 정도 공공성이 필요하긴 해도 ‘절대적 평등’의 논리에 매몰되면 미래 세대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원자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구직 문의가 왔지만 대부분은 “6개월 정도만 일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6개월을 채우고 그만둔 뒤 나라에서 나오는 실업급여를 받겠다는 계산이었다. 하루 10∼12시간을 일하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급여는 월 120만 원 안팎. 월 100만 원 정도인 실업급여와 별 차이가 없다.
이 어린이집의 원장은 “어린이집이 받을 수 있는 보육료가 ‘상한제’로 묶여 있어 보육교사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석사급 인력들이 보육원 교사로 몰린다는데 우리는 돈 더 내고 질 좋은 보육서비스를 받겠다는 수요가 넘쳐나도 법으로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 평준화 요구에 고급 일자리 알고도 못 만들어
“우리나라 병원은 외부에서 투자를 받을 수도, 마음 놓고 수익사업을 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경영이 어려워도 ‘인수합병(M&A)을 당할 자유’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 일자리 창출은커녕 지금 일자리나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인천 한 중견병원의 병원장)
현행 의료법상 영리법인은 병원을 세울 수 없고, 기존 병원도 주주를 모으거나 채권을 발행해 투자를 받지 못한다. 수익사업의 범위가 제한돼 있고, 의료기관 간 M&A도 불가능하다. 자본 투자를 통한 병원 간 서비스 경쟁이나 차별화의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셈이다. 아직 인천의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을 짓겠다는 외국 투자가가 한 곳도 없는 이유도 수익 창출의 기회를 막아 놓은 강도 높은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규제 완화를 통해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환자 유치에 성공할 경우 2020년까지 의료 부문 일자리가 최대 10만 개 이상 새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 의료관광, 호텔 분야 일자리 창출력 높아
정부의 의료관광객 유치 목표는 2020년까지 100만 명.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1명꼴로 건강검진을 받는 걸 고려하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 7년 뒤엔 지금보다 10만 명 이상 더 많아질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크기의 검진센터 두 곳을 더 지어야 수용할 수 있는 수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의 직원 수를 고려하면 의사 140명, 간호사 220명, 방사선사 80명, 영양사 및 운동 처방사 60명 등 고급 일자리 약 660개가 새로 창출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추산이 현실이 되려면 호텔 입지에 대한 법규나 까다로운 비자 규정 등 관련 규제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의료관광객 100만 명이라는 목표도 현재의 규제 환경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수치라는 지적이 많다. 큰 폭의 서비스 규제 완화가 이뤄진다면 의료 교육 관광 레저 등 서비스 부문에서 창출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향후 10년간 최대 50만 개에 이를 것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우선 2020년까지 외국인 환자 100만 명을 유치하면 의료서비스 및 관광업계에 5만∼21만 개의 일자리가 더 생겨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 분야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크다. 또 영리법인의 학교 설립 규제를 풀고,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로 돌리면 향후 10년 내 10만 명이 관련 분야에 취업할 수 있다. 호텔 쇼핑 해양스포츠 골프산업 등 레저 및 관광 부문 규제가 획기적으로 풀리면 분야별로 수만 개의 새로운 고용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서비스산업총연합회장)은 “새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식하고 서비스 규제 완화를 통한 고용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리조트 2,3개 만들면 6만명이 직장 얻어 ▼
■ 관광레저산업 거미줄 규제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 대부분은 호텔에 올 때 관광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왜 호텔을 지을 때 꼭 일정 규모 이상의 주차장을 두어야 합니까? 각종 부담금 등 규제비용을 서비스나 시설의 질을 높이는 데 쓰지 못해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서울 도심에 관광호텔을 짓고 있는 사업자 A 씨는 호텔과 관련한 각종 규제에 대해 이렇게 푸념했다.
한국에서 호텔·관광업, 레저산업 등은 ‘향락산업’이라는 낡은 인식 때문에 규제의 틀에 그대로 갇혀 있다. 지난해 1000만 명을 처음 넘어선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6년 12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로 인해 2016년까지 관련업계 종사자가 2만5000명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호텔산업과 관련해 환경 교통 건축 등 수많은 규제가 여전히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호텔산업 발전이 부진한 이유로 호텔 설립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들었다. 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내에 관광호텔 하나를 지으려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70개가 넘는 ‘도장’을 받아야 한다. 또 개별 입지를 확정하기까지 최대 18단계의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내수 활성화 대책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골프산업 규제 완화’도 여전히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과 정치권 일부의 반발 때문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정부는 해외골프 수요를 국내로 돌리겠다는 취지로 회원제 골프장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연말 국회에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골프장 개별소비세는 내국인 카지노의 4배, 경마장의 23배 수준이다.
해외로 떠나는 한국인 골프 여행객은 연간 100만 명 정도. 1인당 경비를 200만 원으로 치면 매년 2조 원의 부가가치가 증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회원제 골프장 수는 228개로 골프장 한 곳(18홀 기준)당 관리직 70명, 캐디 80명, 주방 인력 및 비정규직 50명 등 약 200명의 인원이 일한다.
지난해 회원제 골프장 1곳당 연간 이용자 수가 7만5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해외로 골프 치러 나가 한 번 여행에 3번 정도 라운드를 하는 100만 명이 국내로 발길을 돌린다면 8000여 개의 골프산업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수 있다.
힘들게 규제를 풀어놓고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2011년 정부는 국내 크루즈선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설치하기로 하고 관련 규정을 바꿨지만 아직 ‘선상 카지노’는 한 곳도 들어서지 못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법적 걸림돌은 모두 제거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측에서 특혜 시비 등을 우려하며 모집공고를 미뤄 아직까지 카지노 허가를 받은 곳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허가가 늦어지는 사이 최초의 국적 크루즈선으로 주목을 받았던 ‘하모니크루즈’는 수익성 악화로 1년 만에 운항을 중단했다. 이 배의 승무원 수는 365명. 그만큼의 일자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영종도 등에 리조트가 2, 3개만 들어서도 약 6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객 유치 및 내수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해양스포츠 산업에 대한 규제도 여전한 상황이다. 골프와 마찬가지로 ‘귀족 스포츠’라는 편견이 발목을 잡고 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정부는 해양레저 산업을 육성하면 2015년까지 3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2조 원이 넘는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 팀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 팀원
유재동 문병기 박재명 김철중(경제부)
김희균 이샘물(교육복지부)
염희진(산업부)
김동욱 기자(스포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