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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한줄]안녕!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

입력 | 2013-02-02 03:00:00

“떠나는 날 용서해줘. 언제나 널 많이 그리워할 거야.” 캐멀 ‘Long Goodbyes’(1984년)




#1 노르웨이의 숲은 영원히 날 가둬버린 것 같았다.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 창밖에는 자작나무가 끊임없이 늘어서 있었다. 창백하고 가녀린 몸 전체를 흔드는 그들의 애처로운 인사는 작별인사인지 환영인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서 와, 잘 가, 어서 와, 잘 가, 어서 와….’ 물결처럼 다가오는 그들은 초고속 열차로 몇 시간이나 달려도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애원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방법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 방향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어보였다. 10년 전 일이었나.

그가 날 떠났는지, 아니면 내가 그를 떠난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어느새 마음속에 1000만 그루쯤 자라난 자작나무는 날 포위한 채 끝없이 흔들리며 말한다. ‘어서 와, 잘 가, 어서 와, 잘 가, 어서 와….’

#2 신시사이저와 기타가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긴장감 있는 단조의 16분 음표 분산화음을 흘려보내며 곡은 시작된다. 음표의 숲을 가로질러 플루트의 우울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내 아련한 프렛리스 베이스(기타류 현악기에서 반음의 경계를 가르는 막대인 프렛이 없는 베이스 기타) 연주가 이어지고 크리스 레인보의 낮은 목소리가 등장한다.

‘따사로운 오후의 호숫가. 산들바람은 아이들의 풍선을 들어올리고. 옛날에. 아주 먼 일은 아니지. 그녀는 작은 숲에 있는 집에 살았어. 그녀는 그날을 회상한다. 고향을 떠났던 그때를….’

#3 캐멀은 1971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됐다. 초기 앨범부터 하나의 음반에 하나의 스토리를 담아 유장하게 전개시켰고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의 열광을 끌어냈다. 그들의 음악은 복잡다단한 연주를 고단하고 길게 끌어가다가도 어느새 감성적인 멜로디를 터뜨리며 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앤드루 레이티머는 라이브 무대에서 기타 솔로를 연주하며 눈물짓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들의 1984년 작 ‘스테이셔너리 트래블러’ 앨범은 골수팬들에게는 적잖이 외면받은 작품이다. 독일 분단을 둘러싼 가슴 시린 이야기를 풀어낸 콘셉트 앨범이라는 점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음악에는 당대 팝계를 휩쓸었던 뉴 웨이브 음악과 신스팝의 가벼움이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슴 뭉클한 발라드 곡 ‘롱 굿바이스’만으로도 음반은 충분히 빛났다.

#4 잠시 악곡이 멈춘다. 드럼의 탐탐(작은북)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기로 하고 망설이다 문을 두드리듯 울리며 후렴구를 끌고 나온다. 신시사이저의 날렵한 분산 화음이 조성한 16비트의 긴장감은 장조로 바뀌는 악곡과 드럼 라이드 심벌의 8분 음표로 풀어진다. 끝내 이별의 말을 결심한 사람의 힘이 풀린 손목처럼.

‘긴 안녕. 날 너무 슬프게 해. 지금 떠나야 해. 가고 싶지 않지만. 이편이 더 낫다는 걸 알아.’

화성의 가장 아래를 지켜야 할 프렛리스 베이스의 가락도 그의 말을, 멜로디를 따라간다. ‘날 너무 슬프게 해. 지금 떠나야 해.’

#5 기차는 끝내 숲을 벗어났다. 승무원의 안내방송은 알 수 없는 노르웨이어로 목적지 도착을 알렸다. 노르웨이의 숲은 서쪽 끝 항구도시 베르겐에서 우릴 놔줬다.

하지만, 서울의 겨울비는 끝내 그와 나 사이를 갈라놨다. 여행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끝이 났다.

#6 영롱한 신시사이저 음향과 함께 곡 후반을 장식하는 레이티머의 기타 솔로는 노래 속 주인공을 위로하듯 함께 눈물을 흘린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악곡도 결국 사라져간다.

‘긴 안녕. 날 슬프게 해. 지금 떠나는 날 용서해줘. 너도 알겠지. 널 많이 그리워할 거란 걸.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도.’

임오션 음악이 내가 꿈꾸는 바다. theugly7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