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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북핵 벼랑 앞에 선 韓美中日

입력 | 2013-02-02 03:00:00


방형남 논설위원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몇 달 뒤 서울 주재 외국대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유럽국가의 외교관인 그가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4, 5개 정도 보유하는 것은 용인하려고 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근거를 물었더니 “본국 정부가 미국과 접촉한 결과를 토대로 내린 결론”이라고 대답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을 맞고 보니 새삼 유럽대사가 한 말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틀 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국방장관 청문회에서 척 헤이글 지명자가 북한을 ‘현실적인 핵 파워(real nuclear power)’라고 규정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2006년부터만 따져도 8년째 국제사회가 ‘북핵 불용(不容)’을 외쳤지만 결국 북한의 핵 보유 저지는 실패로 끝나는 것인가.
북핵저지 실패로 끝나나

돌이켜보면 1차 핵실험 때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 핵실험 5일 만에 유엔 안보리가 대북(對北)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했지만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유엔의 제재는 핵을 보유하려는 북한의 의지보다 훨씬 약했다. 2009년 2차 핵실험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핵 저지 전선의 균열이 가장 심한 곳은 한국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차 핵실험 1년 뒤인 2007년 10월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다. 북한 지도자와 담판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나 노 전 대통령은 핵 문제를 비켜갔다. 온갖 합의가 들어있는 10·4선언 가운데 북핵 관련 언급은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가 전부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일에게 북핵 불용은 남한의 레토릭(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김정일의 핵 정책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승계됐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유훈 실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10·4선언에 ‘남북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는다’거나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포함시켰더라면 김정은이 유훈 운운하며 막가파 식으로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1, 2차와는 차원이 다르다. 남북미중일(南北美中日)이 모두 벼랑 앞에 섰다고 할 수 있다. 29세 김정은의 첫 핵실험을 막지 못하면 세계는 앞으로 수십 년간 그의 핵 도발에 시달려야 한다. 북한이 농축우라늄 핵실험에 성공하면 핵무기 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늘릴 수 있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자칫하면 5년 임기 중 2차례의 북한 핵실험을 겪었다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계’는 부도수표로 변하고, 북핵 반대를 공언한 시진핑 중국 총서기의 위신도 땅에 떨어진다.
김정은 겨냥한 비상대책이 해법

벼랑 끝에 몰렸으면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후 제재를 들먹일 게 아니라 3차 핵실험 저지에 모든 것을 거는 결기가 필요하다. 1월 22일 안보리가 채택한 2087호로는 부족하다. 안보리는 북한의 최춘식 제2자연과학원 원장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는 장거리로켓 발사 이후 영웅 칭호를 받고 공식 행사에서 김정은 바로 옆에 서는 영예를 누렸다. 로켓 도발의 주역을 빼놓고 누굴 제재한다는 말인가.

안보리가 정말로 북한 핵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라면 김정은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3차 핵실험을 하면 ‘중대한 조치’를 취한다는 모호한 태도 대신에 북한 정권을 겨냥한 행동에 돌입하겠다는 직접적인 경고를 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북핵 저지는 물 건너간다. 시간이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