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이벤트/존 캐스티 지음·이현주 옮김/392쪽·1만7000원·반비
저자 존 캐스티. 현재 미국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의 선임연구원이다. 반비 제공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지만, 진짜 섬뜩한 건 가해자가 ‘사람’일 때다. 귀신이나 괴물도 무섭긴 하다. 하지만 악을 저지르는 인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한국도 연쇄살인마나 사이코패스가 이미 여러 차례 등장하지 않았나.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 주는 공포는 가상세계와는 격이 다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 공포에 대한 담론을 다뤘다. 저자는 21세기 인류가 지금 당장이라도 ‘예상치를 벗어나 문명을 붕괴시킬’, X이벤트에 맞닥뜨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등에서 응용수학분야 교수를 지냈던 경력을 바탕으로, 지구를 ‘복잡성 이론’으로 진단했을 때 언제 대참사가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왜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위험은 커지는 걸까. 요즘 가장 민감한 이슈인 ‘난방’을 예로 들어보자. 조선시대엔 문제가 생기면 비교적 손쉽게 ‘자체 해결’이 가능했다. 땔감이 떨어지면 나무를 해오면 된다. 아궁이가 시원찮아도 집안 장정이 대충 손볼 수 있다. 요즘은 어떤가. 세상이 좋아져 벽에 달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방안이 따스해진다. 하지만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전문가의 도움 없이 해결할 이가 몇이나 될까. 기술의 발달이 삶을 편리하게 만든 건 맞다. 그러나 그만큼 의외의 난관이 벌어졌을 때 대응하기가 훨씬 까다로워졌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재난에 점점 취약해지는 모순이 발생하는 셈이다.
X이벤트는 여러 갈래에서 터질 수 있다. 인터넷 중단과 식량 위기, 석유 단절이나 전염병, 금융의 몰락까지…. 문제는 파괴력이다. 원인이 자연재해인지 인간의 실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인간이 쌓아올린 현대문명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일이 터지면 해결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2013년 현재 가운데 핵폭발로 인한 피해, 어느 쪽이 크겠나.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이다.
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얼른 정신 차리고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의 과학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할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그런데 영 뒷맛이 씁쓸하다. 책에 따르면 X이벤트란 인류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사건이다. 예측 불가능한 일에 대한 예방책이란 게 말이 되는 소릴까. 말꼬리 잡지 말라고? 그래도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지 않나. “인간은 훨씬 더 심한 역경을 견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위의 장님 문고리 잡기 식 결론은 이제 좀 그만 듣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