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새로운 나라로’
최근 만난 재일 교포의 말이다. 강경 보수 성향인 아베 씨가 총리가 된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극우들의 데모로 몸살을 앓았던 신오쿠보도 오히려 긍정적 ‘아베 효과’를 보고 있을 정도다.
아베 총리는 총선 유세 때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과거 담화를 새롭게 고치겠다” “시마네(島根) 현 차원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를 정부 행사로 격상시키겠다” 등과 같은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정작 총리가 되고 나서는 “한국은 일본과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국가”라며 화해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세계관에는 ‘일본은 피해자’란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인다. “일본은 (패전 후) 60년간 국제 공헌에 노력해 오며 호전적인 자세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국가 간에 문제만 생기면 과거 전쟁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에 꾹 참으며 오로지 폭풍우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 왔다. 그 결과 걸핏하면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듯한 인상을 세계에 심어 왔다.”
헌법 개정과 군사대국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옛) 서독은 같은 패전국인데도 1955년 주권 회복과 동시에 국방군을 창설했고 통일까지 36차례나 헌법을 개정해 징병제를 채용하고 유사 사태에 대비한 법도 정비했다.”
‘현실주의자’ 성격도 엿볼 수 있다. 총선 유세 때 한국, 중국에 초강경 발언을 했지만 정작 양국과는 우호관계를 맺는 게 낫다는 인식을 느낄 수 있다.
그는 한국에 구애(求愛)하듯 글을 썼다.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 붐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다. 나는 일한 관계에 대해 낙관주의다. 우리가 과거에 대해 겸허하고, 예의 바르게 미래지향적으로 임하는 한 반드시 양국 관계는 보다 좋은 반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강한 일본’이다. 지난해 총리가 되고 나서는 경제 회생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책에서 중국과 관련해 정경 분리에 기반한 ‘호혜적 관계’를 촉구한 것도 중국의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뭔가 2% 정도 아쉽다. △A급 전범에 대한 오해 △‘야스쿠니(靖國) 비판’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기미가요’는 비전투적 국가(國歌) 등 일부 글의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아베 총리가 역사 인식에서 이웃 국가의 주장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동아시아 국가도 강한 일본을 환영하지 않을까.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