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인사 스타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장관 제청권, 장관의 차관 인사권을 요즘보다 더 존중했다. 그러나 안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사찰’의 어두운 그림자도 공존했던 시절이다.
○ 장관 인선, 비서실과 총리 합작품
박 전 대통령은 국방·내무·법무·무임소장관, 국세청장, 관세청장, 철도청장, 병무청장 등 핵심적인 자리의 인선은 자신이 직접 했다. 국무총리도, 대통령비서실장도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올린 후보군을 놓고 국무총리와도 상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총리가 건의하는 새 후보가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1971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의 건의에 따라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이 문교부 장관에, 윤주영 공보수석비서관이 문화공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두 장관은 비서실의 추천 리스트에 없던 이들이다.
각 부 서기관 승진부터 차관까지 인선은 오롯이 장관의 몫이었다. 장관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해당 부서에서 영(令)이 바로 선다는 게 대통령의 소신이었다. 차관의 경우는 대통령이 인선에 도움을 줄 때도 있었다. 대통령이 신임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차관으로 누구를 쓰겠느냐”고 묻고 장관이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 박 전 대통령이 장관과 함께 상의를 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 인선은 비서실장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은 “대통령이 사단장 시절 헌병부장을 지낸 이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었고, 군에 있을 때 당번병, 운전병이 부관과 운전사로 함께 있었을 뿐 그 이외 대통령과 지연, 학연, 군으로 엮인 사람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 사찰 통한 인사 검증
존안카드는 중앙정보부가 주로 만들었지만 보안사, 치안본부, 검찰 등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한 기관에서만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편파성을 우려한 조치였다.
최소한 각 부처의 1급 국장 이상은 모두 존안카드가 작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안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존안카드를 정당화했지만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사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찰을 하다 보니 존안카드에 담긴 내용은 지금 인사파일보다 내용이 훨씬 풍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박근혜, 열린 검증 체계 구축 숙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로 검증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박 전 대통령처럼 사찰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김세중 전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집권했기 때문에 인사에 대한 축적된 노하우도 상당했다”며 “박 당선인은 당시보다 검증이 어려운 환경에 있지만 열린 인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