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논설위원실장
‘나에게…’는 분명, 일본인들에게는 불편한 연극이다. 그러나 정의신은 ‘자이니치(在日) 3부작’이라고 해서 그간에도 일본 식민통치의 그늘과 재일동포의 애환을 다룬 작품을 많이 쓰고, 연출해 왔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는 곧 재일동포다. 2008년의 ‘야끼니꾸 드래곤’은 일본에서 상도 여럿 받았다.
그의 작품이 양국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그가 한일 관계를 ‘거대한 정치’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에 상처받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사랑하고, 화해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인 듯하다. 희극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나에게…’도 1924년 경성에서 멀지 않은 어느 지방에서 우연히 만난, 천민집단 남사당패의 꼭두쇠와 조선의 백자를 사랑하는 한 일본인 교사 사이에서 싹튼 우정과 갈등이 기둥 줄거리다.
그렇다고 해서 초난강을 매국노라고 부르는 게 온당한가. 초난강이 연기한 야나기하라 나오키는 일제 때 실존 인물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모델이다. 조선의 서민이 사용하는 도자기와 공예품을 사랑하고, 수집하고, 높게 평가했던 인물이다. 진심으로 한국과 한국문화를 사랑했던, 몇 안 되는 조선사람 편이었다. 따라서 이 역은 초난강이 적격이다. 정의신도 “구사나기 씨를 가정하고 시놉시스를 썼다”고 할 정도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제 양국에서 ‘시대를 앞서 간 민예학자’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비록 무대이긴 하지만 야나기 무네요시와 초난강의 만남은 필연이다. 그런데도 초난강을 매국노라고 하는 것은 100년 전 야나기 무네요시를 오늘 부관참시하는 것과 같다. 일부 누리꾼의 일탈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은 오히려 ‘시대의 양심’으로 평가받는 선인(先人)을 연기하는 데 둘도 없는 배우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싶다. 그가 10년 넘게 한국을 알려고 노력해 오지 않았다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찬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아직, 일본에서 활동했던 훌륭한 한국인을 연기하는 데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연예인이 없다.
그런 주문이 불편하다면 역시 초난강이 주연한 ‘99년의 사랑―저패니스 아메리칸스’라는 TV 드라마를 떠올려 주길 바란다. 2010년에 방영됐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인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핍박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4대에 걸쳐 번듯한 일가(一家)를 이룬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다. 여러 장면 중에서도 당당한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만으로 만든 부대에 자원입대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선에 투입돼, 종국엔 가족사진을 움켜쥐고 독일군의 총탄에 스러져 가는 초난강의 연기는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일본 시청자들은 한국인보다 초난강의 기구한 운명에 더 몰입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한 스토리이지 않은가. 온갖 횡포를 부리는 미국과 미국인은 일제강점기의 일본과 일본인, ‘잽’이라고 멸시받던 초난강은 ‘조센진’이라는 차별에 울던 조선의 필부들과 한 치의 틈도 없이 겹친다. 그러나 조선과 조선인의 간난신고(艱難辛苦)는 그래도 민주국가라는 미국에서 겪었던 초난강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는 게 진실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살아있는 ‘초난강’이 많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문화재 전문털이범이 훔쳐온 쓰시마(對馬) 섬의 신라, 고려 불상 2점에 대한 결론은 빨리 내는 게 좋다. 일단 범인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문제는 불상인데 일본에 넘어간 경위는 철저하게 조사하되, 만약 일본 측이 강제로 빼앗아 간 걸 증명할 수 없다면 국내법과 유네스코협약에 따라 빨리 되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우리도 일본에 할 말을 할 수 있다. 원래 ‘우리 것’이니까 마냥 시간을 끄는 건 국익에 상처를 준다.
그런 게 정의신이 말하는, “머리와 머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서로 알게 되면 신뢰가 생기고 우정도 자란다”(2012년 11월 1일자 아사히신문)는 단계가 아닐까 한다.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순 없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