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술 빼고 철학은 살린 ‘처세론’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주역강의(周易講義·을유문화사)’의 저자 서대원은 세칭 점쟁이다. 30년 이상을 역술인으로 살았다. 그런 사람이 해설을 붙였으니 어떤 이는 인생의 길흉화복에 대한 똑 부러지는 예언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역강의는 역술과는 거리가 멀다. 점술의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저자는 아예 괘상을 빼버렸다. 그러자 오롯이 심오한 동양철학과 현실적인 처세론이 남았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처세론이다. 역(易)이란 ‘변한다’는 뜻인데, 천지만물의 변화 원리를 밝히고 거기에 대처하는 인간의 처세를 담은 책이 주역이다. 수천년 전 책임에도 오늘날까지 난세를 헤쳐 나가는 뭇사람의 지침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유교 경전 가운데 가장 심오한 우주론적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삶의 방법까지 제시한다니 놀랍다. 잘 해설된 주역은 결코 고리타분하지 않다.
필자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이전 30여 년간 증권시장에서 소위 증권밥을 먹고 살았다. 일반 투자자도 그렇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수익률 경쟁은 더욱 피를 말린다.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손해를 본 경우도 있었고, 조금 부족한 듯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보기 좋게 성공한 적도 있었다(41장, 손·損편,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돌이켜보면 인생 성패에 다 때가 정해져 있다는 주역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주역의 때란 나뭇가지에 매달린 감이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그런 때가 아니다. 일이 잘못되었으면 바로 고치고(已事 천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습하는(損其疾 使천) 기다림이다. 간절한 염원과 적극적인 준비가 기다림의 또 다른 의미이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기업과 나라의 살림살이가 때를 만나 모두 번성하고, 증권·파생상품 투자자 여러분도 철저한 준비 끝에 큰 수익을 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