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덕진경찰서는 3일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51)와 어머니(54), 형(26)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발코니에 피워놓은 연탄화덕을 방으로 옮겨 질식사시킨 혐의로 둘째 아들 박모 씨(2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살인 예행연습까지
박 씨는 30일 오전 1시 부모가 잠을 자기 전에 음료수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수면제 가루가 든 음료수를 건넸다. 부모가 잠들자 작은방에 연탄화덕을 가져다 놓았다. 이후 30일 오전 2시 11분 아버지 휴대전화로 아버지 회사 직원에게 “오늘은 출근하지 마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작은방에서 연탄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문까지 닫았다.
또 형에게는 30일 오전 3시 20분 먼저 휴대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집 인근 편의점에서 형과 함께 맥주를 사 형의 승용차에서 나눠 마시고 30일 오전 4시 반경 귀가했다. 박 씨는 귀가해 수면제가 든 우유를 형에게 마시게 한 뒤 잔혹한 범행을 이어갔다. 박 씨는 30일 오전 6시 반 형의 휴대전화로 형 여자친구 A 씨와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행복해라. 잘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살극으로 위장하기 위해 치밀하게 연출한 것이다.
○ 자살 위장용 연탄, 결정적 단서
경찰은 박 씨가 “사건 당일 집에 돌아온 뒤 형이 준 우유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며 “형이 동반자살하려 했던 것 같다”고 주장한 것에 주목했다. 경찰은 형의 그랜저 승용차 뒷좌석에서 연탄, 번개탄이 발견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형은 사건 발생 직전인 30일 오전 3시경까지 여자친구 A 씨와 함께 있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헤어질 때까지 그랜저 승용차 뒷좌석에 연탄, 번개탄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자살을 결심한 형이 자신의 승용차에 연탄을 다시 가져다 놓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재산 노린 패륜 범죄?
박 씨의 아버지는 육군 소령으로 제대한 뒤 5, 6년 전부터 회사를 운영했다. 사건 당일에도 숨진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주문전화가 쇄도했다. 아버지 회사는 집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층에는 165m²(약 50평) 면적의 공장이 있고 2층에는 132m²(약 40평) 규모의 가정집이 있다. 회사 용지·시설을 포함해 시가 10억∼2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씨가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숨진 부모나 형 명의의 보험이 가입됐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모가 사기를 당해 경제적으로 어려워 불화가 심했고 형은 최근 시작한 떡갈비 가게 영업이 부진해 힘들어했다”며 “가족들과 동반자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박 씨는 부모와 형을 죽이고 1월 31일 병원에서 퇴원해 31일 오후부터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박 씨는 체포된 뒤 “내 여자친구를 만나게 해주면 자백하겠다”고 하거나 경찰 조사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등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신상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극히 꺼렸다.
전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