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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먹인후 자살 위장… 전주 일가족 사망은 차남 패륜극

입력 | 2013-02-04 03:00:00


집단 자살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했던 전북 전주시 일가족 사망사건이 둘째 아들의 계획적 패륜 범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아들은 원룸에서 살인 예행연습까지 하고 자신의 형이 자살을 주도한 것처럼 꾸민 뒤 형의 지인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까지 보내는 등 치밀하게 집단 자살로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 덕진경찰서는 3일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51)와 어머니(54), 형(26)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발코니에 피워놓은 연탄화덕을 방으로 옮겨 질식사시킨 혐의로 둘째 아들 박모 씨(24)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살인 예행연습까지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박 씨는 지난달 8일 집 보일러 연통 배관을 20cm 정도 절단해 부모를 질식사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23일경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연탄가게와 철물점에서 연탄 10여 장과 화덕, 번개탄, 연탄집게를 구입했다. 이후 집에서 2km 떨어진 원룸에서 연탄화덕을 피워놓고 사전 범행연습을 했다. 수면제는 인근 병원에서 두 차례 진료를 받아 구입했다.

박 씨는 30일 오전 1시 부모가 잠을 자기 전에 음료수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수면제 가루가 든 음료수를 건넸다. 부모가 잠들자 작은방에 연탄화덕을 가져다 놓았다. 이후 30일 오전 2시 11분 아버지 휴대전화로 아버지 회사 직원에게 “오늘은 출근하지 마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작은방에서 연탄가스가 새어나오지 않도록 문까지 닫았다.

또 형에게는 30일 오전 3시 20분 먼저 휴대전화를 걸어 “술을 마시자”고 했다. 집 인근 편의점에서 형과 함께 맥주를 사 형의 승용차에서 나눠 마시고 30일 오전 4시 반경 귀가했다. 박 씨는 귀가해 수면제가 든 우유를 형에게 마시게 한 뒤 잔혹한 범행을 이어갔다. 박 씨는 30일 오전 6시 반 형의 휴대전화로 형 여자친구 A 씨와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행복해라. 잘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살극으로 위장하기 위해 치밀하게 연출한 것이다.

○ 자살 위장용 연탄, 결정적 단서


경찰은 박 씨가 “사건 당일 집에 돌아온 뒤 형이 준 우유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며 “형이 동반자살하려 했던 것 같다”고 주장한 것에 주목했다. 경찰은 형의 그랜저 승용차 뒷좌석에서 연탄, 번개탄이 발견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형은 사건 발생 직전인 30일 오전 3시경까지 여자친구 A 씨와 함께 있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헤어질 때까지 그랜저 승용차 뒷좌석에 연탄, 번개탄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자살을 결심한 형이 자신의 승용차에 연탄을 다시 가져다 놓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누군가 형의 승용차에 연탄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 박 씨는 자살 위장용 마지막 시도로 형의 승용차에 연탄을 가져다 놓고 자신의 승용차를 세차했다. 박 씨의 범행 은폐 시도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가 된 것이다.

○ 재산 노린 패륜 범죄?

박 씨의 아버지는 육군 소령으로 제대한 뒤 5, 6년 전부터 회사를 운영했다. 사건 당일에도 숨진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주문전화가 쇄도했다. 아버지 회사는 집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층에는 165m²(약 50평) 면적의 공장이 있고 2층에는 132m²(약 40평) 규모의 가정집이 있다. 회사 용지·시설을 포함해 시가 10억∼2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 씨가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숨진 부모나 형 명의의 보험이 가입됐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모가 사기를 당해 경제적으로 어려워 불화가 심했고 형은 최근 시작한 떡갈비 가게 영업이 부진해 힘들어했다”며 “가족들과 동반자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피의자 박 씨는 부모와 형을 죽이고 1월 31일 병원에서 퇴원해 31일 오후부터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박 씨는 체포된 뒤 “내 여자친구를 만나게 해주면 자백하겠다”고 하거나 경찰 조사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등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신상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극히 꺼렸다.

박 씨는 충남 모 대학 2학년을 다니다 휴학했다. 휴학 이후 군 생활을 했고 지난해 1월경 제대한 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최근에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정신 병력이 없다. 하지만 형에 비해 부모의 사랑을 덜 받는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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