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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스마트폰 1대 = 독서 170권

입력 | 2013-02-05 03:00:00


 

졸업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들이 원하는 졸업선물 1순위는 단연 최신형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학부모로선 스마트폰을 선뜻 선물해주기가 쉽지 않다. 중학생이 되면 가뜩이나 학업 부담이 늘어나는데 아이가 게임과 스마트폰 메신저 채팅에 빠져 공부를 멀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초등 6학년 아들 강모 군을 둔 어머니 박모 씨(40·경기 용인시)도 마찬가지였다. 구형 2G 휴대전화를 쓰던 아들은 7개월 전부터 “우리반에 스마트폰 없는 애가 7명밖에 없다”면서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아들은 스마트폰이 없던 반 친구들이 하나둘 스마트폰을 갖게 될 때마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아이는) 반에 6명 남았다” “이제 5명 남았다”면서 어머니를 압박하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이러기를 한 달. 결국 아들 입에선 “엄마. 우리반에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담임선생님과 나밖에 없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들의 ‘처절한’ 요구에 어머니 박 씨는 제안을 했다. 정해진 독서량을 모두 채우면 스마트폰을 사주기로 한 것. “독서를 많이 해 ‘스마트’해진 사람만이 스마트폰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어머니가 내건 조건은 이랬다.

① 독서 50권 달성 시: 2G폰을 최신형 폴더폰으로

② 독서 500권 달성 시: 2G폰을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②를 선택했다. ①을 선택할 리 만무하지만 굳이 ①을 추가한 것은 아들이 독서를 스스로 선택한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조건 ②에 ‘토’를 달았다. “졸업까지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500권은 못 읽는다”는 것. 아들은 ‘독서 총 150권’을 수정 제안했다. 결국 모자(母子)는 줄다리기 끝에 매일 1권을 읽으면 달성 가능한 ‘170권’으로 합의했다.

‘며칠은 열심히 읽다가 한 달도 못 버티겠지’ 하고 생각한 박 씨는 놀라운 일과 마주하게 됐다. 아들이 믿기 어려운 수준의 진지함으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학교수업을 마친 뒤 학원에 갔다가 귀가해 숙제까지 끝내면 오후 9시가 넘지만, 아들은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에는 오전 1시까지 책을 읽었다. 아들이 책을 손에 잡은 채 잠드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아들은 위인전 ‘허준’에서부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아들의 집념은 집안 분위기까지 바꿨다. ‘동물농장’을 읽은 아들은 책 내용을 두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책 내용으로 가족이 대화를 하는 것도 참 오랜만(어쩌면 처음)이었다.

지난달 25일. ‘170권 독서’ 대장정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튿날 아빠는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을 주문했다. 아들은 숙원을 이루었다. 뛸 듯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박 씨는 깨달았다. 아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새로운 미션을 수행토록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란 사실을.

양보혜 기자 yang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