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학년 아들 강모 군을 둔 어머니 박모 씨(40·경기 용인시)도 마찬가지였다. 구형 2G 휴대전화를 쓰던 아들은 7개월 전부터 “우리반에 스마트폰 없는 애가 7명밖에 없다”면서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아들은 스마트폰이 없던 반 친구들이 하나둘 스마트폰을 갖게 될 때마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아이는) 반에 6명 남았다” “이제 5명 남았다”면서 어머니를 압박하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이러기를 한 달. 결국 아들 입에선 “엄마. 우리반에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담임선생님과 나밖에 없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① 독서 50권 달성 시: 2G폰을 최신형 폴더폰으로
② 독서 500권 달성 시: 2G폰을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②를 선택했다. ①을 선택할 리 만무하지만 굳이 ①을 추가한 것은 아들이 독서를 스스로 선택한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조건 ②에 ‘토’를 달았다. “졸업까지 6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500권은 못 읽는다”는 것. 아들은 ‘독서 총 150권’을 수정 제안했다. 결국 모자(母子)는 줄다리기 끝에 매일 1권을 읽으면 달성 가능한 ‘170권’으로 합의했다.
학교수업을 마친 뒤 학원에 갔다가 귀가해 숙제까지 끝내면 오후 9시가 넘지만, 아들은 이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에는 오전 1시까지 책을 읽었다. 아들이 책을 손에 잡은 채 잠드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아들은 위인전 ‘허준’에서부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아들의 집념은 집안 분위기까지 바꿨다. ‘동물농장’을 읽은 아들은 책 내용을 두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책 내용으로 가족이 대화를 하는 것도 참 오랜만(어쩌면 처음)이었다.
지난달 25일. ‘170권 독서’ 대장정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튿날 아빠는 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을 주문했다. 아들은 숙원을 이루었다. 뛸 듯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박 씨는 깨달았다. 아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는 새로운 미션을 수행토록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란 사실을.
양보혜 기자 yang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