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대사관… 유연한 곡선지붕 조형미, 경동교회… 사찰의 외부공간 적용
김중업의 대표작으로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주한 프랑스대사관. 설문에 참여한 김현섭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콘크리트를 활용해 르 코르뷔지에의 조형성과 한국 건축의 전통을 효과적으로 융합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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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두 거장이 활동할 당시의 한국 사회는 치열한 동서 냉전과 압축적 경제성장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런 여건 속에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들은 다음 세대 건축가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될 토대를 놓게 된다. 즉 서구 건축을 선험적인 모델로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한국적 지역성을 투영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물적 기반이 신통치 않았던 여건 속에서도 높은 수준의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근대적 제도에 걸맞은 물적 장치들을 건설해야만 했던 시대적 요구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물론 상반된 개성을 가진 두 건축가는 자주 충돌하기도 했다. 전통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처럼 김중업은 그의 스승인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보여주었던 조형 의지에 집착했다. 전통 건축의 지붕선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것을 다양한 작품들로 현대화했다. 지금은 허물어지거나 변형돼 잘 식별되지 않지만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유연한 곡선 지붕들은 그런 건축가의 의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김수근이 서울 중구 장충동에 설계한 경동교회.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 조형을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DB
김수근
이번 조사에서 알 수 있듯 이들 거장이 타계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신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마냥 반길 만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 건축가들은 그들의 틀 속에서 머무르며 그 변화를 선도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통해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기보다는 변화를 뒤쫓으며 담아내기에 급급했다. ‘전위’의 DNA를 잃어버리면서 그들은 물적 환경의 창조자로서 건설의 전체 과정을 조율하는 전통적 지위를 상실했고 계속해서 주변화되고 상업화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두 건축가가 우리에게 남긴 부정적인 유산도 큰 몫을 했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한국 건축계는 성찰의 시기를 맞고 있다. 떠들썩한 잔치가 끝나면서 분주함에 가려졌던 구조적 모순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이즈음에 우리는 이들 세 건축물이 가지는 현재적 가치를 곱씹으면서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현대건축은 일상과 유리된 예술 작품이 아니고 도시로부터 고립된 기념비는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과거로 향했던 건축가들의 시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래로 향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건축은 이제 시대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두 거장이 남긴 50년의 틀을 깨고 한국 건축이 새로운 도약을 이루길 기대해 본다.
정인하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