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5일 화요일 흐림.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트랙 #43 My Bloody Valentine ‘Sometimes’(1991년)
지난달 29일 밤, 일본 도쿄 시부야의 스크램블 건널목 앞. 40대 후반쯤 돼 보였다. 술을 잔뜩 마신 모양이었다. 길을 물으려 “익스큐즈 미”를 했을 뿐인데 그가 적대감을 보였다.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인 줄 알았나 보다. 아저씨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널 얼마든지 한 대 칠 수 있어. 난 지금 취한 데다 화가 났거든.’ 무서웠다. 슬슬 꽁무니를 빼는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속도가 붙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전. 나는 시부야역 근처의 충견 하치코 동상 앞에서도 외로웠다. 현지 음반사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 S를 만나기로 했는데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갔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의 20분은 두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나타난 S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그런데도 먼저 일어서려는 S를 “희윤 상 영어가 짧으니 네가 (통역을 위해) 있어야 한다”며 붙잡았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써준 기사 덕에 트위터 팔로어가 30%나 늘었다며 고마워하던 M은 술값도 내지 않았다.
다음 날 밤, 난 다시 시부야로 나갔다. 공연장 ‘시부야-오’ 앞에서도 외로웠다. 무작정 아무 공연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간 그곳에는 한껏 멋을 낸 20대 현지 여성들이 줄을 서 있었다. 착해 보이는 이에게 “표는 어디서 사야 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그는 “나니진다요?” 대신 “티케토?(티켓 말이죠?)” 하며 친절하게 안내해줬다.
이날 공연은 하필 기괴한 화장과 무대매너로 무장한 일본 비주얼 록 밴드의 합동 콘서트였다. 막이 열렸다. 밴드 ‘메지브레이’는 공포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분장을 했고 ‘암버 그리’도 그에 못잖았지만 연주는 흠잡을 데 없었다. 일사불란하게 손동작을 맞춰 하며 종교집단처럼 열광하는 관객들이 더 무서웠다. 나와는 다른 검은 머리의 사람들 틈에 섞여 호텔로 돌아오며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도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노래가 나왔었구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