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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정양환]비석과 불상

입력 | 2013-02-07 03:00:00


정양환 문화부 기자

최근 국내 문화재계에선 두 가지 ‘사건’이 꽤나 시끄러웠다. 먼저 지난달 중순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린 성에서 고구려 비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열흘쯤 뒤엔, 일본에서 도난당한 국보급 불상 2점이 국내로 밀반입됐다 들통 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가지 모두 학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남은 것으로 확인된 고구려 비석은 광개토대왕비와 충주고구려비뿐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비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고고학적 대(大)발견’이란 수사도 그리 과하진 않다. 게다가 국내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이 세운 수묘비(守墓碑)로 셋 중에 가장 이른 시기에 세운 비석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불상은 범인이 잡힌 뒤 오히려 후폭풍이 더 거셌다. 두 불상은 일본 나가사키 현 쓰시마 시 가이진 신사와 관음사에 각각 모셔져 있던 것들이다. 문제는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고려시대에 조성된 우리 보물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일본에 ‘빼앗겼던’ 문화재인데 돌려주지 말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교계는 물론 몇몇 국회의원까지 나서 반환을 반대하고 있다.

두 사안은 서로 결이 다르다. 하지만 묘하게도 들여다보고 곱씹을수록 입맛이 씁쓸해지는 공통점이 있다. 분명 우리 문화재인데 딱 잘라 우리 것이라 말하기 애매하다. 감정적으로 얘기하기도, 논리나 법만 갖고 따지기도 난감하다. 홍길동의 ‘호부호형’도 아니고….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다.

일단 고구려 비석부터 되짚어보자. 아무리 역사에 단언은 없다지만, 너무 가정과 추측이 넘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만약 …하다면” “…으로 보인다”로 가득하다. 왜? 국내에선 실물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구자료로 삼는 탁본도 직접 뜬 게 아니라 중국 측이 공개한 사진이다. 진품을 감정하는데 인터넷 전송 파일만으로 판단하는 격이다. 열악한 상황에도 실마리를 구하려 분투하는 국내 학자들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중국이 비석을 보여주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우리 신세가 왠지 딱하다.

불상도 답답하긴 엇비슷하다. 분명 우리 선조가 만든 문화재니 속내야 국내에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일본에서 도난당한 게 확실하면 마냥 우기기도 께름칙하다. 물론 부당하게 강탈당한 보물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걸 어찌 증명해야 하나. 신라인들이 호의로 선물했거나 고려가 일본의 요청에 감읍해 보냈다면? 게다가 신중치 못하게 대처하다간, 앞으로 국외소재 문화재 연구나 교류전시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물론 이런 우려가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흔쾌히 공개할지도, 불상 역시 곧 원만하게 마무리될지 모른다. 다만 이럴 때마다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이들의 목소리는 불편하다. 그런다고 뭐가 잘 해결된 적이 있었던가. 가끔은 열정이 참 부담스럽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