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그런데 이상한 건 50대 남자들의 자살이 다른 연령층의 자살에 비해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청소년이나 유명인의 자살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큰 관심을 가지고 안타까워하며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외쳐 대지만 50대 이상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퇴직 전후의 문제는 개인 문제라서일까. 청년실업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퇴직자 문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일까. 설마 50대는 죽어도 아깝지 않은 나이라서?
한국의 50대 남자들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2012년 9월 발표된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은 2000년에는 50대 주요 사망원인 중 5위에 머물렀지만 2008년과 2011년 조사에서는 암에 이어 사망원인 2위를 기록했다. 특히 남자의 자살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35세 이후에는 점점 낮아지다가 65세 이후에야 서서히 증가하는 여자들의 자살과는 대조적이다. 2011년 기준으로 50대 남자들의 자살 사망률은 10만 명당 61.5명으로 50대 여자들의 20.7명보다 3배 가까이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50대가 되면, 아니 40대부터 이미 일터에서 밀려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란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정년연령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퇴직자 연구’를 하면서 수많은 퇴직자를 만나본 나는 ‘제도’ 못지않게 퇴직에 대한 개인의 시각이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없으면 죽는다’ ‘무능한 가장은 살 가치도 없다’ ‘일을 그만두면 무조건 불행하다’ ‘늙을수록 더 불행해진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나는 오히려 퇴직한 후가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59세의 A 씨가 대표적이다.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한 A 씨는 자신이 다니던 은행이 합병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감원당했다. A 씨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동료와 부하직원들, 그리고 마지막엔 본인마저도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오렌지 껍질처럼’ 버려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치가 떨리도록 충격적이고 힘들었다. 그래서 퇴직 직후에 허망함과 분노를 삭이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1년 이상이나 불면증에 시달렸고 우울증 약도 먹었다. 그때 돈 걱정보다도 더 힘들었던 건 갑자기 많아진 ‘시간’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왔다. 바로 그 많은 시간이 독이자 약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으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일직선으로 달려온 자신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자아도취적으로 살아왔는지’ ‘왜 늙어 죽을 때까지 갑으로만 살 것처럼 착각했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굽실거리던 사람들한테 왜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는지’ 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퇴직 당시만 해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자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기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도 왔다.
100세 시대란 50대에 절망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걸 말해주는 시대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여겼으나 또 다른 길이 펼쳐진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가족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까지, 포기할 건 포기하고 마지막 남은 허세와 체면마저 버리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뿐인가. 50대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주역으로서의 풍부한 ‘과거’뿐 아니라 100세 시대의 새로운 ‘노년문화’를 이끌어갈 의무도 지니고 있다. 이들이 가족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진정한 책임감’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