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시급높아 “학비 벌자”… 마트 완구판매 90 대 1 경쟁도
이화여대 2학년 A 씨(21)는 3일부터 한복을 입고 설 선물세트 판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할인마트에서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설 하루만 쉬고 연휴기간에도 일할 계획이다. 시급은 최저임금 4860원보다 많은 7000원이다. 광주가 고향인 A 씨는 부모님과 설 명절을 함께할 생각을 접었다. A 씨는 "KTX 왕복차비만 7만 원이 넘는다"며 "부모님이 45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주시는데 고향 갈 차비까지 달라고 할 염치가 없다"고 말했다. 주거비를 제외한 A 씨의 한 달 생활비는 25만 원. 아낀다고 아껴도 밥값, 책값, 교통비를 빼면 늘 부족한 탓에 그녀에게 귀향은 '사치'였다.
짧은 연휴 때문에 귀향을 포기한 20대가 늘어 아르바이트 자리도 부족했다. A 씨는 여러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전전하다 사전오기 끝에 붙었다. 그녀는 "연휴에 열심히 일해서 두 달 치 생활비를 꼭 벌겠다"고 말했다. 딸의 사정을 아는 부모도 광주에 오라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에 설 귀향을 포기한 채 아르바이트로 명절을 보내는 젊은이가 많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5, 6일 이틀간 서울 시내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상점 등에서 일하고 있는 50명의 젊은이를 인터뷰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과의 정을 나눌 시간마저 포기한 채 명절에 번 돈으로 부모의 부담을 덜겠다는 '효자 효녀'였다. 백화점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고 하루 9시간을 서서 제품을 홍보하는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가족과의 명절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학비 마련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이모 씨(19)는 등록금 33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참치선물세트를 팔고 있다. 이 씨는 "하루 9시간 일해 일당 6만 원을 버는데 착실히 모아서 대학 등록금에 보태고 싶다"며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치킨집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도 귀향 대신 알바를 택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김모 씨(26·여)는 "백수 처지로 대구 고향집에서 부모님이나 친척들 눈치 보는 것보다 서울에서 일하며 용돈도 벌고 취업을 준비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부모님의 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는 착한 아들, 딸도 있다. 이달 말 군 입대를 앞둔 김우성 씨는(20)는 백화점에서 고된 택배물품 나르기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입대 전에 용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운동화 한 켤레와 제주도 여행권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일하는 B 씨(25·여)도 "힘들어도 참고 일하면 설날 이후 50만 원이 모인다"며 "어머니의 얼굴 주름을 펴줄 보톡스 수술비로 쓸 생각"이라고 했다.
단기 아르바이트 구하는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갑(甲)'인 업소의 횡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고려대생 안모 씨(28)는 "근무시간과 조건을 채용 후에 바꾸거나 채용할 것처럼 면접을 본 뒤 전화 한 통 없는 곳이 많다"며 "한 푼이 아쉽다보니 서러워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정규 인턴기자 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
김명종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학년